지난 9일 밤 일본 도쿄의 벚꽃놀이 명소인 우에노공원.절전으로 가로등은 드문드문 켜져 있지만,만개한 핑크색 벚꽃으로 길가는 환했다. 예년 같으면 밤 벚꽃놀이를 나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을 곳이다. 그러나 이날 우에노공원은 썰렁했다. '3 · 11 대지진'이후 유흥을 자제하자는 자숙(自肅) 분위기로 올해 일본의 벚꽃놀이는 완전히 실종됐다.

11일로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등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지역에는 아직도 17만명의 이재민이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2만70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사망자 수는 최종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수습 전망도 보이지 않는 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경제가 받는 타격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또 한번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직접 피해 사상 최대

일본 정부는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액이 최대 25조엔(347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는 규모다. 1995년 고베 대지진(10조엔)과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액(810억달러 · 6조5400억엔)을 크게 웃돈다. 자연재해로는 사상 최대다. 여기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선 누출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원전 사고로 인한 전력 부족의 파장도 심각하다. 노무라증권은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 일본 우량기업 400개사의 올해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이익이 전력 공급 감소로 170억달러(18조7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무라는 "도쿄전력과 도호쿠(東北)전력이 담당하는 지역의 회사들은 일본 생산활동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SMBC닛코(日興)증권은 일본의 올해 실질 GDP가 0.5%포인트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 큰 문제는 소비 부진

원전 사고에 따른 전력 부족과 방사선 공포, 자숙 분위기로 인한 소비 부진 등 2차 피해도 만만치 않다. 소비는 일본 GDP의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지진 이후 일본의 소비는 착 가라앉았다.

일본자동차판매협회에 따르면 소형 자동차를 제외한 승용차와 트럭 버스의 지난달 판매량은 27만9000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37% 감소했다. 3월 기준 판매 감소폭은 1968년 이후 최대다. 도요타의 판매량은 46%나 감소했고,닛산과 혼다차도 38%와 28%씩 줄었다.

호텔과 골프장 백화점 관광지의 매출도 뚝 떨어졌다. 도쿄시내 최대 호텔 체인인 프린스호텔의 경우 외국인 예약의 90%가 취소됐다. 전국에 44개 호텔을 운영하는 이 호텔은 작년 4월부터 올 2월까지 숙박객 가운데 20%가 아시아 국가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도쿄 인근 지바현의 한 골프장은 매년 1300팀 정도에 이르던 4월 예약이 250팀으로 줄었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는 "소비가 본격 회복되려면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심에 질책당한 간 나오토 정부

10일 47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도쿄 등 12곳의 도지사와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크게 패배한 것도 ‘3·11 대지진’ 이후 한 달간의 민심을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민주당은 도쿄도 홋카이도 미에 등 3곳의 도지사 선거에 지원 후보를 냈지만 자민당 추천 후보에게 모두 패했다.민주당은 자민당과 공동 지원한 6명의 후보만 당선시켰고,시마네 오이타 나라 등에선 아예 지사 후보를 내지 못했다.특히 민주당은 41개 지역 광역의회 선거에서 어느 한 곳에서도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메이지대학의 가와카미 가즈히사 교수(정치학)는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간 총리 사퇴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