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 명단을 모아 놓은 '블랙리스트'가 건설업계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4월 채권은행들의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기존 B(일시적 유동성 부족)등급의 건설사도 C(워크아웃) 이하 등급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특히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여파로 STX건설 극동건설 등 그룹 계열 건설사들이 각종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주택 미분양이 늘고 있는 STX그룹 계열 STX건설의 부도설이 나돌아 해당 업체가 적극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STX건설 부도설로 STX그룹뿐 아니라 대형 건설사의 주가까지 급락했다. 그룹사가 인수한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휘청거리자 시장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채권은행들이 4월부터 건설사 등을 대상으로 일제히 정기 신용위험평가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건설사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이달 말까지 기본 평가를 마무리해 세부평가 대상 업체를 선정하고 5~6월 업체들을 종합 평가해 A(정상),B(일시적 유동성 부족),C(워크아웃),D(법정관리)등급을 나눌 방침이다. C,D등급을 받은 기업은 채권단과 협약을 맺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건설업계와 금융권은 최근 건설경기 침체가 더욱 심해지고 있어 지난해 B등급을 받아 구조조정을 모면한 업체라도 올해는 등급이 하락하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B등급을 받은 건설사는 동부건설 삼부토건 삼환기업 코오롱건설 등이다. 이 가운데 실제 신용평가에서 B등급 판정을 받았던 동일토건이 지난해 말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워크아웃 중이던 월드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올 들어 건설사들의 아파트 분양 실적은 여전히 부진하다. 부산 등 지방권 일부 지역에서 미분양이 빠른 속도로 소진되는 등 부동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도권 분양 시장은 여전히 찬바람이다.

더욱이 미분양 아파트 대부분이 수요가 급감한 중대형 주택이어서 소진 속도가 느리다 보니 건설사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J건설 재무 담당자는 "채권은행들이 신용위험평가의 강도를 높일 경우 C등급 이하 건설사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은 거의 모든 건설사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부실 건설사가 계속 늘어날 경우 건설 및 주택 공급 시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공능력 평가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주택 전문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면 앞으로 주택 공급 부족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