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일본 돕기 열풍
신군부 등장으로 어수선하던 1980년 여름엔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들쥐'에 비유해 구설수에 올랐다. 시류를 좇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탓에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를 추종할 것이란 요지였다. 무슨 망발이냐는 여론이 들끓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리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무엇이 대세다 싶으면 앞뒤 안가리고 그 쪽에 줄을 서는 '편승 효과'에 빠져든다는 거다.
이런 성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는 "'한국병'으로 불리는 급한 성격이 한국의 정보화를 앞당기는 밑거름"이라고 봤다. 격정적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뭐든 단시일 내에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참담한 재난을 당한 이웃 일본을 돕는 데도 이런 기질이 발휘되고 있다. 반일감정 탓에 주저하거나 악플을 다는 사람이 적지않을 거란 예상은 기우였다. 인터넷에 위로의 말이 넘쳐나고,기부도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기업 단체 연예인 운동선수 일반인 할 것 없이 도처에서 성금이 밀려든다. 일본을 돕거나 위로하지 않으면 대세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다. 주한 일본 대사도 "정말 한국 같이 좋은 이웃이 어디 있을까"라며 감격해 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감정의 과잉이다''변형된 일본 콤플렉스다''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아낌없이 돕는다는 도덕적 우월성의 과시다''문화교류로 일본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 결과다'….아마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에너지의 긍정적 분출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기름에 오염된 태안 돕기 등에서도 경험했다. 관건은 역동성을 어떻게 조율하고 이끌어갈까이다. 일본 돕기 열풍이 한 · 일 관계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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