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역시 냉정했다. 코스피지수는 14일 15.69포인트(0.80%) 오른 1971.23으로 마감,사흘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일본 대지진의 수혜 및 피해에 따라 종목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반사이익이 예상되는 정보기술(IT) 철강 정유화학 등은 급등한 반면 유통 · 항공주는 수직 하강했다.

이는 1995년 1월17일 고베대지진 직후 철강 · 화학주가 단기 랠리를 펼친 것과 '닮은 꼴'이란 평가다. 전문가들은 일본 지진이 국내 증시에 단기 호재일 수 있지만 '약발'이 오래가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베대지진의 학습효과

이날 증시는 개장 직후 3대 주체인 외국인 기관 개인이 모두 주식을 순매수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외국인은 모처럼 1351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 같은 모습은 1995년 1월17일 고베대지진 때의 '학습효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번 지진으로 반사이익이 예상되는 일부 업종 대형주들이 강하게 솟구쳤다. 삼성전자가 엿새 만에 4.41% 급등했고 포스코(8.32%) 하이닉스(8.66%) 에쓰오일(12.90%) 호남석유(11.11%) 현대제철(10.12%) 등 IT · 철강 · 정유화학주는 10% 안팎 급등세였다.

고베대지진 직후에도 이들 업종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고베대지진 이후 엔화 가치가 단기간 강세를 보였던 그해 4월18일까지 코스피지수 대비 업종별 상대수익률 면에서 IT(21.94%) 철강(11.48%) 운수장비(3.63%) 화학(1.75%)이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호텔신라(-9.83%) 대한항공(-7.33%) 등 유통 · 항공업종은 이날 급락했다. 1995년에도 마찬가지 흐름이었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고베대지진을 전후해 아시아 신흥국에서 자금 유출이 일어났고,당시에도 미국 경제는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며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업종별 희비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현재 증시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분석했다.

◆엔화 약세 시 국내 증시에 악재

고베대지진 당시 경험에 비춰보면 국내 IT · 정유화학 · 철강주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세계 3위 원유 소비국인 일본의 생산과 소비가 타격을 받으면 국제 유가가 안정될 가능성이 높고,일부 업종에선 글로벌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도 완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지진으로 타격을 받지 않은 일본 기업들도 전력 부족과 물류 차질이 장기화하면 피해가 불가피해 국내 기업들의 단기 수혜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지진이 국내 증시에 악재가 되거나,최소한 중립 변수가 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가장 주목할 변수는 일본 엔화 가치"라며 "지금은 1995년 경험을 바탕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엔화 약세는 결국 일본 기업들과 경합하는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박 팀장은 엔화 약세를 예상하는 근거로 △일본 경제 펀더멘털 약화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 △지진 피해 복구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꼽았다.

조 센터장은 "원전 폭발 등 사태가 여전히 진행형이어서 1분기 어닝시즌이 시작되는 내달 중순까지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라며 "단기적 관점에서 펀더멘털에 비해 주가 조정폭이 큰 종목 중심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