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살았던 이순신은 인간적 위대함과 전략적 탁월함으로 칭송받고 있으며,20세기에 살았던 하이에크는 노벨 경제학상으로 그의 사상적 연구 성과물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삶에는 400여년의 긴 시간 간격이 있지만 이들이 살았던 대부분의 시간은 절대 고독의 세월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전쟁은 국가의 절대적 지원 아래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조정의 지원을 일절 받지 못했다. 지원은커녕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의 경계심은 물론,일부 대신을 제외한 조정의 모함과 질시 속에서 고독하게 싸웠다. 그런 점에서 러 · 일 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전쟁의 추를 일본으로 기울게 한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이순신은 해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며,이순신과 비교하면 자신은 하사관도 못 된다"고 극찬했다. 이순신의 신발 끈도 묶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이순신은 풍전등화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군사적으로 월등한 일본과 맞서 한양으로 가는 남해와 서해의 뱃길을 틀어막고 옥포,사천포,당포,안골포,부산포,한산도,명량,노량 해전 등을 모두 승리로 이끌어 불패의 신화를 낳으며 전란을 종식하고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이순신보다 354년 늦게 태어난 하이에크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케인스 경제학이 태풍처럼 불어 닥쳐 정부 개입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고독하게 싸웠다. 이후 정부 개입주의 사조가 워낙 강해 자신의 자유주의 사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알프스에 칩거했다. 평생에 걸쳐 이룩한 자신의 학문 세계가 내동댕이 쳐지는 것을 목격한 하이에크는 몸과 마음이 쇠하여 모든 여행 계획도 취소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는 알프스에서 온갖 거짓 지식이 난무하는 세상에 보내는 최후의 통첩으로 뒷날 노벨 경제학상 수상 연설이 된 '지식의 가장(The Pretence of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한다. 이후 정말로 뜻밖에(unexpectedly) 찾아온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삶의 활력을 찾고 저술활동을 하지만,그가 보낸 많은 시간은 절대 고독의 세월이었다. 수상 이후에 그가 한 말은 인상적이다. "나는 노벨상 같은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노벨상을 받고 나서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는 것을 보니 노벨상이 좋기는 좋은 것 같다. "

일본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이순신을 지원해야 할 조정이 당파 싸움으로 얼룩졌던 당시와 정치권 및 시민사회의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매우 흡사하다. 핵무기를 배경으로 남한 국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하거나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을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잘못으로 몰아붙이는 무리들을 보고 이순신이 살아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세종로에 우뚝 서 있는 그가 오늘도 나라의 안보마저 자신들의 이해보다 아래에 놓는 무리들의 치졸한 행태를 꾸짖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한편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 개입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당시 외롭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했던 하이에크가 나라 살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해괴한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뭐라 할까? 쏟아지는 무상 복지정책들은 가까운 장래에 한국 사회를 그리스나 일본처럼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병들게 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이 되어 있는 북한과 복지 문제에 대해 잘못된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설득력 있는 논리에 기초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식인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면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독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설파한 이순신과 하이에크의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