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이 우리 경제의 현안과제이자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로 떠오르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정유와 LPG 업계의 불공정거래와 가격담합 여부, 그리고 밀가루 · 커피 등 94개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에 대해 대대적인 직권조사를 벌였다. 기업들의 독과점 지위 남용, 가격담합이나 불공정 거래행위가 물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공정위는 경쟁당국으로서 마땅히 이런 반경쟁적 행위를 규제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직권조사가 조사권의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서버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직접적인 수색, 당해 업무 담당이 아닌 임원 사무실 등에 대한 직접 조사, 심지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원가 자료를 통째로 가져가는등 사실상 영장 없이 압수 · 수색이 집행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반경쟁적 행위를 일삼는 기업을 철저히 조사해 '시장경제의 지킴이'로서 본연의 소임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사의 엄정성을 유지하고, 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려면 공정위는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는 자기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법상 공정위는 현장조사권을 비롯해 자료제출명령권, 영치권, 계좌추적권 등 광범한 조사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공정위 조사는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부과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행정조사로서 영장에 의하지 않은 임의조사에 불과하다. 조사과정에서 기업이 조사에 불응하거나 조사를 거부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이외에 조사를 강제할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기업들은 공정위의 눈치를 보며 조사에 순응하는 실정이다.

이런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려면 가격 카르텔, 입찰담합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 관한 한, 이미 독일 · 프랑스 등 EU 국가와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강제조사권이나 범칙조사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쟁당국의 강제조사라 하더라도 헌법상 영장주의를 위반하거나 회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조사가 압수 · 수색의 정도에 이를 때에는 절차의 적법성(due process of law) 확보를 위해 법원의 영장을 받아 이뤄지도록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공정위 조사가 법의 시행에 필요한 최소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비례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피조사자의 법익 침해도 최소화되게끔 조사권 남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위는 조사가 개시단계에서부터 효율적으로 집행될수 있도록 분야별로 전문적 자격과 실무 경험을 축적한 직원들을 충원하고, 끊임없이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조사기법의 개발과 함께 경제분석기법 선진화 노력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밖에 조사과정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협조를 구하려면 조사의 법적 근거와 목적, 조사대상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공정위 직권조사가 특정 혐의점을 포착하지 않은 채 단순 심증만으로 이뤄지거나, 조사자 편의 위주로 장기간 진행된다면 기업 입장에선 공정위 조사를 납득하기는커녕 오해와 불신만 커질 뿐이다. 현재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실시되고 있는 '미란다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도록 공무원의 준법의식을 일층 강화하고, 조사권 남용에 대한 제재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 공정위는 이제 한 세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 할 길목에 놓여 있다. 공정위의 성숙한 법 집행을 기대해 본다.

신현윤 < 연세대 법학 전문대학원장 / 한국경쟁법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