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투자자금은 재분배 과정을 거치고 있다. 상당수가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이 매력적인 미국으로 흘러들고 있다. "(퀸시 크로스비 푸르덴셜 파이낸셜 시장전략가)

전문가들은 글로벌 펀드자금의 신흥국 '엑소더스'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금의 본격적인 재분배 과정으로 분석한다. 신흥국에 치중했던 투자금을 회수해 선진국시장으로 분산시키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에 서 있는 한국에서도 자금 이탈과정이 나타나겠지만 시장에 미치는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흥국서 2주 동안 100억달러 이탈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하는 조짐은 지난해 12월 넷째주(20~24일)에 나타났다.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신흥시장 주식형 펀드에서는 30주 만에 처음으로 5억6200만달러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이후 순유입으로 돌아섰던 신흥국 펀드는 지난해 12월 마지막주(24~28일)에 다시 30억4400만달러가 빠졌다.

지난달 중국이 지급준비율을 인상한 것을 비롯 한국 인도 태국 등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신흥국의 긴축 우려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집트의 유혈사태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자 신흥국 자금의 '엑소더스'는 가속화됐다. 지난주(1월31일~2월4일) 신흥국 펀드에서는 3년 만에 가장 많은 70억20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신흥국에서 빠져 나간 자금은 최근 경기회복으로 꿈틀대는 선진시장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선진시장에는 6주 연속 124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민정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국에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크게 높아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경기회복이 가시화된 선진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신흥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자금이 다시 옮겨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자금의 이동으로 주요국 증시의 등락도 엇갈렸다. 지난달 영국(-0.63%)을 제외한 프랑스(5.28%) 미국(2.72%) 독일(2.36%) 등 주요 선진국 증시는 동반 상승한 반면 인도(-10.64%) 인도네시아(-7.95%) 필리핀(-7.61%) 등 신흥국 증시는 급락했다.

국내에 설정된 해외투자펀드의 희비도 교차됐다. 북미(1.71%) 유럽(1.81%) 일본(1.13%)에 투자한 펀드는 지난달 수익을 냈지만 인도(-12.03%) 친디아(-4.72%) 브릭스(-3.56%) 중국본토(-3.41%) 펀드는 큰 폭의 손실을 입었다.

◆국내증시,MSCI 편입 기대로 타격 적어

한국 등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자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에 따르면 한국 관련 뮤추얼펀드는 지난달 24~28일(19억4800만달러)에 이어 이번 주(1월31일~2월4일)에도 44억9200만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국내증시에서 외국인의 자금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12월 3조6256억원에 달했던 외국인 순매수 규모(유가증권 시장 월간기준)는 지난달 3466억원으로 급감했다. 김주형 동양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흥국과 선진국의 성격을 모두 지닌 한국에서 외국인들은 자금을 모두 회수하지는 않더라도 전반적으로 매도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인다"며 "외국인의 매도로 적어도 2월은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덕에 중 · 장기적으로 우(右)상향 기조가 꺾이진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이석진 동양종금증권 자산전략팀장은 "원자재와 밀접한 식료품이 물가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신흥국에서 30~50%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14% 정도로 미국(15%)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이슈가 본격화되는 시기에도 한국은 안전지대로서 증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오는 5월 예정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대한 기대도 국내 증시의 자금 이탈을 완화시켜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