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구제역으로 3일 현재 정부가 살처분한 소 · 돼지는 70만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이젠 전국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유독 한가한 곳이 있다. 국회다. 12월 한 달간 구제역이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가는 동안에도 국회는 새해 예산안 단독처리를 놓고 정치싸움을 벌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야의 책임공방 속에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한나라당을 향해 "'형님예산''4대강 사업'예산을 챙기느라 민생 예산 확보에 소홀히 했다"고 공격하며 장외투쟁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형님예산'이 영포(영일 · 포항)지역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기 바빴다.

여야는 구제역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하는 말만 앞다퉈 쏟아냈을 뿐,정작 눈 앞의 현안인 구제역법안 처리엔 인색했다. 한나라당은 "구제역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축전염예방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하는데,민주당이 예산안 투쟁만 외치며 발목을 잡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3일 "민주당이 장외투쟁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구제역을 확산시켰다"고 비판하는 '소극(笑劇)'까지 더했다. 야당을 포용해 구제역 확산부터 막아야 하는 여당의 덕목을 찾아보기는 좀처럼 힘들다. 실제 한나라당 내부에선 민주당 탓만 하고 있는 지도부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았다.

첫 구제역 발생지인 경북에 지역구를 둔 여당 의원은 "당 지도부가 구제역 해결이 정말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면 야당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국회로 복귀시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예산안 단독 처리 규탄을 위한 장외투쟁으로 인해 구제역 사태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와중에 여야는 가축전염예방법 개정안에 대한 이슈 선점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원래 한나라당은 김영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축전염예방법 개정안을 처리하려 했지만,민주당은 같은 취지의 법안을 별도로 내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여야가 티격태격하다 결국 해를 넘겼다. 여야가 조만간 회담을 열어 법안 처리 문제를 논의한다니 지켜 볼 일이다.

박신영 <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