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 제도' 활용 자진신고 삼성전자 원색 비난 "LCD 시장서 밀리는데 따른 '초조감' 방증" 분석
대만 LCD 업체들이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가격담합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나서 대만 정부와 LCD업계가 관련 사실을 최초로 신고한 '삼성 때리기'에 나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1위 재벌인 훙하이그룹(鴻海科技集團) 창업주 궈타이밍(郭台銘) 이사장이 지난 10일 삼성전자를 비난한 데 이어 13일에는 스옌샹(施顔祥) 대만 경제부장이 '삼성 때리기' 대열에 합류했다.

스 부장은 대만 입법원(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기업은 상거래 도의가 있어야 하고 일반적 상업 관습을 완전히 저버리고 폭로하는 행위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상도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궈 이사장은 자주 규정을 위반하는 삼성전자가 가격 담합의 주 기업인데도 자진 신고하고 벌금을 물지 않게 됐다고 비난했다.

궈 이사장은 이번에 3억 유로라는 가장 많은 벌금을 부과받은 대만 CMI의 대주주이고, 그가 세운 홍하이그룹은 애플 제품의 위탁생산으로 유명한 폭스콘을 소유하고 있다.

대만 정·재계 인사들의 이 같은 '삼성 때리기'에 대해 국내 업계에서는 기업의 경영활동 중 일어난 사건을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때 한국의 LCD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만 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기업들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자 이에 대한 분풀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 들어 LCD 패널 시황이 나빠지면서 대만 LCD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하자 EU 과징금 부과 사건을 빌미로 삼아 대만 정·재계가 '삼성 때리기'로 화풀이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3분기의 경우 대만의 AUO만이 0.2%의 영업이익을 올렸을 뿐 나머지 대부분 기업들은 적자를 기록했으며 4분기에도 패널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적자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들은 향후 가장 큰 LCD 시장이 될 중국에서 차세대 LCD 공장 설립 승인을 받은 반면 대만 기업들은 대만 정부의 규제로 신청조차 못해 한국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만 측이 삼성전자를 걸고 넘어지는 꼬투리가 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 제도는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에서 1978년 처음 도입한 이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활용하고 있다.

2006년에는 미국에서 D램 반도체 가격 담합 혐의로 삼성전자가 3억 달러, 하이닉스가 1억8천5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는데, 당시 최초 신고자였던 미국의 마이크론은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과징금을 면제받은 바 있다.

국내에도 1997년부터 도입됐다.

지난 10월 삼성전자, LG전자, 캐리어 등 3개 가전제품 업체가 초·중·고교 및 교육청 등에 시스템에어컨과 TV를 납품하면서 가격 담합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 때도 역시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최초로 자진 신고한 LG전자는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은 반면 삼성전자(175억1천600만원)와 캐리어(16억5천100만원)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EU 집행위의 LCD 담합 과징금 부과를 계기로 대만에서 일고 있는 반한 감정과 '삼성 때리기' 움직임은 LCD 시장에서 점점 한국 기업들에 밀리고 있는 대만의 초조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