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서 인종주의 시위, 非슬라브계 잇단 공격
'러시아인만을 위한 러시아 건설' 주장

'러시아인만을 위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우는 민족주의 움직임이 수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면서 폭력 시위와 비(非) 슬라브계 주민들에 대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잇단 테러 공격 = 지난 11일 모스크바와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대규모 과격 시위가 벌어져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뒤 이튿날에도 유사한 민족주의 시위가 계속된 가운데 모스크바에서 비(非) 슬라브계 주민들이 잇따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을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한 명은 인종주의자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숨졌다.

12일 밤 모스크바 남부 '수도스트로이텔나야' 거리에서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 출신의 한 남자가 러시아 청년 10여 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현장에서 숨졌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통신에 "여성 한 명이 포함된 약 15명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지나가는 아시아 외모 남성에게 달려들어 손발로 무차별 폭행을 가했으며, 뒤이어 한 명이 칼로 이 남성의 배를 찔러 피해자가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밝혔다.

피살된 남성은 키르기스 남부 오슈 출신의 알리세르 샴시예프(37)로 확인됐다.

이에 앞서 모스크바 시내 '트레치야코프스카야' 지하철 역에서도 러시아 젊은이 6명이 중앙아 우즈베키스탄 출신 청년(27)을 집단 폭행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폭행을 당한 청년은 머리가 깨지고 코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러시아 청년들은 폭행 과정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구호를 외쳤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모스크바 최고 중심가 지하철 역 '오호트니 랴드'에서도 청년들이 비 슬라브계 외모를 한 승객 몇 명을 객차에서 끌어내려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밖에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 출신 주민 3명도 모스크바 시내 거리에서 칼 등으로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일부 청년들은 모스크바 시내 지하철역 여러 곳에서 "러시아인을 위한 러시아"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렸으며, 연방보안국(FSB) 본부 건물 앞에서도 수십 명의 민족주의자들이 인종주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소수 인종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인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부가 민주적 항의 수단을 계속 침해하면 앞으로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드베드프 대통령 "엄단" 지시 = 민족주의 움직임이 심상찮게 번져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즈베스티야 등 주요 일간지들은 13일 일제히 앞서 크렘린궁 인근 마네슈 광장에서 벌어진 과격시위를 대서특필하고 이번 사태가 우발적 시위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들의 조직적 공격일 수 있다며 적극적 대처를 촉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마네슈 광장을 비롯한 러시아 여러 곳에서 질서를 문란케 한 자들을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이날 라시드 누르갈리예프 내무장관으로부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크 시위 진압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뒤에도 "사법 기관은 이런 경우 법률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앞으로도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1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마네슈 광장에서는 약 5천명의 민족주의자들과 축구팬들이 모스크바 출신의 동료 축구팬이 집단 패싸움 과정에서 캅카스 출신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30여명이 부상하고 60여명이 체포됐다.

같은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1천여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