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꾸리는 방법에 대해 밤낮으로 모색해봐도 뽕나무 심기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 같다. 양잠을 하면 선비로서의 체면도 잃지 않으면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겠느냐.' 다산 정약용은 1810년 아들 학연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이 정도론 실천할 것 같지 않았는지 그곳 남쪽에서 뽕나무 365그루를 심은 사람이 한 해 동안 동전 365꿰미를 벌었다는 얘기까지 곁들였다. 그런 다음 '잠실 세 칸을 만들고 잠상(蠶床)을 7층으로 하면 한꺼번에 스물한 칸의 누에를 칠 수 있다'는 구체적 방법까지 일렀다.

국내 양잠산업은 기원 전 2241년께 이미 이뤄졌다고 돼있지만(단군세기) 본격화된 것은 조선조에 들어서부터.태종은 창덕궁을 지은 1409년 궁 뒤뜰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하고 일반인들에게도 권장했다. 세조는 양잠조건을 반포하고 잠서를 간행했으며,성종대에 이르면 임금이 양잠의 시조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농가소득 증대 사업으로 장려되던 양잠산업은 그러나 1976년을 고비로 값싼 중국산 생사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80년대 내내 고전,사양산업 소리를 듣던 양잠산업은 90년대 중반부터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농촌진흥청이 1995년 당뇨병에 효과 있다는 누에분말 혈당강하제를 개발한 이후 동충하초,누에그라,실크화장품 등 각종 기능성 제품과 누에고치를 이용한 인공뼈와 인공고막까지 나오면서 입는 산업에서 먹고 바르고 치료하는 바이오생명산업으로 변신한 게 그것이다.

누에와 뽕나무의 효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누에는 물론 누에똥에도 항암 및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 효과적인 물질이 함유돼 있고,뽕잎엔 뇌 혈류 개선에 좋다는 가바(GABA),오디엔 노화 억제 물질(C3G)과 암세포 성장 억제 물질이 듬뿍 들었다는 마당이다.

이쯤 되면 신성장 동력이 아닐 수 없다고 봤을까. 정부가 2015년까지 시설 현대화,연구개발,기술교육 등에 500억원을 투자하는 '기능성 양잠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1957년 '누에고치 증산 5개년 계획' 이후 53년 만에 '신 양잠산업 육성책'이 나온 셈이다. 모쪼록 세계적인 양잠 강국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