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진동과 종로 1~6가에 걸쳐 있는 피맛길.선술집과 해장국집 골목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고층 빌딩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철거 후 고층 재개발' 위주로 이뤄져 온 도시정비사업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가 '제2의 피맛길'을 막기 위해 도심 시가지에 '휴먼타운'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주목된다.

◆삼청동길,충무로 인쇄골목 등 검토

서울시는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 다세대주택 등 양호한 주거단지를 보존하는 '휴먼타운' 사업을 시가지 정비사업으로 확대키로 했다고 8일 밝혔다.

휴먼타운은 뉴타운과 반대 개념으로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이 아니라 해당 지역 원형을 보존하면서 낙후시설을 보수하는 개발 방식이다.

서울시 진희선 도시관리과장은 "민선4기 이전에 추진된 피맛길 일대 재개발이 옛 모습을 일부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아 특화거리를 보존하되 낡은 시설을 정비하는 '시가지 휴먼타운'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시가지 휴먼타운 사업계획을 수립해 내년 중 적합한 후보지를 선정하고, 2012년부터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후보지는 △북촌 한옥마을과 가깝고 고미술관 등이 밀집한 삼청동길 △인쇄거리로 잘 알려진 충무로 인현동 1가 일대 △화랑과 패션거리로 조성돼 있는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 상권 등 지역을 대표하는 특화 거리가 거론되고 있다. 일부 구간이 남아 있는 피맛길도 시가지 휴먼타운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시가지 휴먼타운 사업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지난해 역사 · 문화적 공간이 잘 보존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피렌체 등을 현지 답사하며 관련자료를 수집했다.

◆주민 동의해야 가능

휴먼타운은 원래 골목길이나 커뮤니티 등 기존 저층주택이 가진 장점과 폐쇄회로TV(CCTV),경로당,어린이집,주차장,공원 등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한 신개념 저층 주거지로 출발한 재개발 방식이다. 서울시는 암사동 서원마을,성북동 선유골 일대 등 5곳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가지 휴먼타운은 지역 특색을 활성화하기 위해 복원,보수 사업과 함께 도로 · 가로 정비,공용 주차공간 확보 등을 지원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가지 휴먼타운은 주거지 휴먼타운처럼 해당 지역 주민이나 소유주들이 동의해야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미 도시환경정비(도심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시가지 휴먼타운으로 지정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철거 재개발을 통해 얻는 개발 이익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밀개발이 반드시 돈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외에서는 오랜 전통을 가진 특화거리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고가의 명품 매장들이 앞다퉈 입점할 정도로 자산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시가지 휴먼타운에 대한 주민들의 선호도도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