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와서 금리만 알아보고 가세요. "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 드려요. "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광명 신촌휴먼시아' 아파트.다음 달 중순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이 아파트 단지에 기자가 들어서자 은행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중 한 명이 "입주 예정자시죠? 저희 은행에서 가장 좋은 조건에 대출을 해드리고 있으니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아주머니를 따라간 곳에는 은행 이름이 새겨진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그 안에는 10여명의 은행원들이 임시 부스에서 입주 예정자들을 상대로 대출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자리가 모자라 천막 바깥에 파라솔이 달린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갖다 놓고 상담하는 은행도 있었다. 은행에서 나눠준 목욕세트 담요 주방용품 등의 사은품을 양팔에 가득 안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고객잡기에 혈안이 된 호객꾼들이 뒤섞여 마치 시골 장터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을 상대로 중도금이나 입주 잔금 대출을 해주는 '집단 대출' 영업현장이었다.

◆8개 은행 대형 천막치고 입주민 상담

이 아파트는 입주 가능 세대수가 총 854세대에 이르는 대형 단지다. 아파트 지상주차장 터에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기업 외환 SC제일 등 8개 은행이 천막을 치고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통상 4~5개 은행이 나오는 게 보통인데 이례적으로 많은 은행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은행 부스를 돌아다니며 대출 상담을 받은 결과 대부분 은행들이 연 3.99%의 금리(코픽스 신규취급액 기준 6개월 변동 금리)를 책정해 줬다. 통상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연 5%대 초반의 금리를 적용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1%포인트 이상 낮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에서 연 4% 미만의 금리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들은 중도상환 수수료나 근저당권 설정비를 50% 깎아주거나 아예 면제해 주는 등의 파격적인 혜택도 제시했다. 일부 은행은 근저당권 설정비나 대출 원금의 일부를 고객이 부담하면 금리를 0.1~0.2%포인트 깎아주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에서는 역마진도 감수한 채 '대출 세일'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일당 10만원 주고 호객꾼 고용

한 은행 직원은 "일부 은행들은 일당 10만원을 주고 아주머니들을 고용해 입주 예정자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몇몇 호객꾼은 서로 고객을 데려가려고 언쟁과 몸싸움까지 했다.

일부 은행은 임원급인 지역본부장까지 현장에 나왔다. 김진억 국민은행 안양지역본부장은 "과거에는 지점장들까지만 현장에 나왔으나 최근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지역본부장까지 현장 영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집단 대출은 고객들이 같은 장소에서 여러 은행들의 조건을 비교한 뒤 선택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면 은행 간 격차가 금세 벌어진다"고 말했다.

◆입주아파트는 담보 확실한 황금시장

은행들이 입주 아파트단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대출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으면 예금 잔액이 줄고 대출 수요가 늘어나야 하는데,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담보대출이 줄고 대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이 증가해 기업대출 수요도 감소했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해져 은행에 예금을 맡기는 고객은 늘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아파트 집단 대출은 대출을 한꺼번에 늘릴 수 있는 황금 시장이다. 입주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담보가 확실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에 따라 시세의 60%(투기지역은 4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광명시 신촌휴먼시아 아파트의 경우 1억8000만원(전용면적 79.33㎡)에서 3억원(142.14㎡ )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입주 예정자의 60% 정도가 대출받는 게 보통"이라며 "이 중 100세대 정도를 유치하면 대출을 100억~300억원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광명=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