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연명하느라 대변을 보기조차 힘든 가난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너무 잘 먹어 병이 생긴다. 대장암은 비만 및 고지혈증과 마찬가지로 고칼로리,고단백의 서구식 식생활로 인해 급증하고 있다. 대장암을 '선진국병''수입병'등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장암은 맹장에서 직장까지 약 1.5m 길이의 부위에 생긴 악성종양을 말한다. 암세포가 생긴 위치에 따라 결장암,직장암으로 구분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3년 만65세 이상 고령자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10만명당 90.3명으로 20년 전인 1983년의 13.5명에 비해 6.7배 늘었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8년 암 진료환자 분석에 따르면 전체 암 환자는 55만226명이고 이 중 대장암은 7만5822명으로 위암(10만126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는 2001년에 비해 2.71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급증세는 한국인의 식단에서 육식의 비중이 높아지고 가공식품 섭취도 늘어난 탓이다. 대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대장 내 용종을 대장선종이라고 하는데 미국 소화기학회 자료에 따르면 2004~2006년 국내 40대 검사대상자의 14.3%에서 대장선종이 발견돼 미국인들보다 많았다.

대장암 발생에는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경적 요인 중에서는 동물성 지방의 과다 섭취와 섬유질 섭취의 부족에 따른 비만이 가장 위험한 인자다. 비만한 사람은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대장암 위험이 10배 이상 높을 뿐 아니라 수술 후 예후도 더 나쁘다. 비만은 대장암뿐 아니라 대부분의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비만관리는 암 예방에 필수적이다.

식사습관을 바로 잡으려면 무조건 육류 섭취를 줄이기보다는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는 게 바람직하다. 술은 가급적 줄이고 담배는 끊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과체중이나 비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육류를 굽거나 튀기는 과정에서 대장암 발생을 촉진시키는 발암물질이 발생되기 때문에 가급적 찌거나 삶아 먹는 것이 좋다. 패스트푸드,과자,도넛,팝콘 등에 사용되는 트랜스지방과 가공육에 방부제로 사용되는 질산염은 대장암과 위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므로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해 대한대장항문학회 발표에 따르면 전체 대장암 환자 중 60세 이상의 고령 환자가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대장암 위험은 높아지며 60세 이상의 고연령대에서는 3명 중 1 명꼴로 대장선종이 발견된다. 나이듦에 따라 대장도 노화되고 변이 대장 내에 더 오래 머무는 게 주요한 원인이다. 실제로 현재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에 진입해 있는 영국에서는 전체 대장암 환자의 82.7%가 60세 이상이다. 한국에서 대장암 발병률이 급증하는 이유 역시 인구의 고령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50세 이상이 되면 5~10년에 한 번씩은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여성에겐 폐경도 대장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국립암센터 통계에서도 65세 이상 여성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 대장암으로 나타났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대장암이나 대장선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데 폐경 후 에스트로겐 생성이 멈추면서 대장암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 의학저널 '소화기장관학(Gastroenterology)' 올 5월호에 실린 이대목동병원을 비롯한 다기관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폐경 후 여성들에게는 비만보다 여성호르몬 결핍이 대장암 발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암은 조기에 발견만 하면 생존율이 90% 이상이므로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장암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혈변이나 설사,변비,빈혈 등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병기가 많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대장암은 1기에 발견되면 4기에 비해 완치율이 7배나 높기 때문에 조기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대장암을 진단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대장내시경 검사다. 항문을 통해 내시경을 삽입해 대장 전체를 관찰한다. 검사를 받으려면 전날 금식 후 하제를 복용해 대장 내에 남아있는 변을 제거해야 한다.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전날만 금식하면 방문 당일 내시경 검사가 가능하며 검사 후 결과에 따라 1주일 이내에 수술까지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장암이 발견되면 수술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고 암이 있는 부위와 그 주변부를 절제하고 나머지 부위를 연결한다. 항문 근처에 발생한 직장암의 경우 항문을 제거하고 복부에 인공항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수술 전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통해 암의 크기를 줄여 가급적 항문을 보존한다. 또 과거와 달리 개복 수술 대신 복강경수술이 가능해 수술 후 통증과 상처도 적고 회복도 빨라졌다.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병행 여부는 암 병기에 따라 결정된다. 수술 직후나 초기에는 수분 공급과 장 휴식을 위해 유동식을 섭취하다가 점차 소화가 잘되는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식단을 바꾼다. 채소와 잡곡을 통해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고 동물성 지방 섭취를 줄인다.

암 발생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암 치료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조기발견이 가장 현명한 예방법이다. 암 가족력이 있거나 염증성 장질환이 있는 경우는 40대부터 주기적으로 검사받는 게 바람직하다.

김광호 이대목동병원 위암대장암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