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안보 전문가들 "러시아 대접받는 건 핵무기 때문"

"러시아는 당분간 현 수준의 핵 전력을 유지해야 한다."

러시아의 전직 고위 안보 전문가들이 러시아가 미국과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 감축 협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1990년대 말 외교부 장관과 총리를 지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1990년대 말~2000년대 중반 외교부 장관과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지낸 이고리 이바노프, 1988년~91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미하일 모이세예프, 핵물리학자 예브게니 벨리호프 등 4명의 저명 안보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15일 유력 일간지 이즈베스티야 1면에 올린 기고문에서 "비핵화 구상의 실현은 국제안보시스템의 심층적 변화가 일어난 뒤에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직 안보 전문가들은 "핵 전력이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보장해 주는 핵심 요소로 이것이 없이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 대외정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아직 널리 퍼져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관계에서 무력 사용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자기방어와 스스로의 적법한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핵전력을 포함한 충분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국제 안보에서의 다자협력, 평화적 분쟁해결, 러시아와의 대등한 파트너 관계 수립 등을 천명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대외정책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것"이라면서 "군축 분야에서는 당분간 신뢰구축 조치가 추가로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핵무기 없는 세상'은 '현 세계에서 핵무기만을 제거한 세상'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대량살상무기(WMD), 재래식 무기, 신형비핵무기 등을 이용한 전쟁 가능성을 배제한 가운데 완전히 다른 원칙과 제도에 기초한 국제관계가 만들어질 때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현재 약소 국가들은 핵무기를 강대국이 확보한 재래식 무기의 절대적 우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강대국 사이의 대규모 분쟁뿐 아니라 지역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메커니즘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런 분석에 기초해 "(세계) 비핵화가 전략적 목표로 남아있어야 하지만 그것의 실현은 모든 국제시스템의 심층적 개편이 이루어진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 없는 세상'을 표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2008년 말로 효력이 만료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하는 새 협정에 서명하는 등 핵 군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는 새 협정에서 양국이 실전 배치하는 장거리 핵탄두 수를 이전 협정에서 합의한 2천200기에서 1천500기로 추가 감축키로 합의한 바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