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과천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53)은 거친 수련을 모두 이겨낸 사람처럼 의욕이 충만했다. 취임 후 짧은 기간이지만 농업정책 현안을 훤히 꿰고 있었다. 배추값 급등,쌀 관세화,농업 보조금 등 논란이 빚어진 각종 사안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배추 가격은 언제 안정될까.

"한때 포기당 1만2000원이 넘었지만 준고랭지 배추들이 출하되는 10월 하순이면 20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다. 13일 현재 3700원까지 하락했다.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나오는 김장용 배추는 총 수요량이 140만t인데 18만t 정도 부족할 것이다. 대신 11월 말부터 나오는 월동배추는 작황이 좋다. 이 물량의 출하 시기를 조금씩 앞당기면 가격이 평년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김장 시기를 예년보다 1~2주만 늦추면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

▼배추값이 폭락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가을배추 작황이 워낙 좋지 않아 월동배추의 일부는 가을배추 대체 수요로 소비될 것이다. 따라서 월동배추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은 없을 것으로 본다. "

▼농산물 유통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유통구조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십년간 해도 안 됐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이것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장관으로 오면서 이런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구체적으로 상식선에서 고민하면 해답이 나온다. 예를 들면 농산물 직거래 비중을 20~30%로 높이려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지,고랭지에 저장시설을 확충하면 어떨지를 고민해야 한다. 포전거래(밭떼기)도 작황에 따라 계약 조건을 달리 할 수 있도록 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농업 보조금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라고 농식품부 간부들에게 주문했다. "

▼농업 보조금은.

"우리 농업이 진정으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조금 개혁을 농식품부 간부들에게 화두로 제시했다. 물론 보조금이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연 이대로만 갈 것인가. 농업의 미래 경쟁력을 생각해보면 저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것이다. "

▼과거에도 여러번 시도가 있었다.

"물론이다. 하지만 당장의 충격을 감내하기 어려워 매번 포기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다 그런 것 아니냐'며 관행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현실을 감안하면 어쩔수 없지 않느냐.골치 아프니까 다음에…'라며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그럭저럭 시간만 갈 뿐이다. 이제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볼 것을 농식품부 간부들에게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중장기적으로 충격을 완화하면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에 대한 보조금 개혁방안을 기초 설계해보도록 주문해놨다. 필요하다면 농민단체와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것이다. "

▼쌀 관세화(시장 개방)문제는.

"매년 9월 말로 세계무역기구(WTO) 통보 시한을 못박고 여기에 임박해서 논의를 진행하니 잘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농민단체들과 합의를 통해 쌀 관세화를 추진하기로 한 당초의 약속을 존중한다. 올해는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앞으로는 통보 시한에 상관없이 진행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논의를 시작해 농민단체들과도 합의해 내년 상반기까지는 매듭짓도록 하겠다. 조기 관세화와 별도로 연말까지 쌀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도 수립해 내놓겠다. "

▼쌀산업발전 계획은 어떤 내용인가.

"발표 전에 얘기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쌀 수확량은 늘어나는데 소비는 줄어드는 수급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또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하고 우리 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를 담을 예정이다. "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은.

"쇠고기 추가 개방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별도로 위생 검역의 문제다. 소비자 신뢰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조치해 나가겠다. "

▼FTA로 농업 부문 타격이 클텐데.

"한 · EU FTA는 축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관세가 최대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돼 당장 큰 충격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 · 미 FTA 때보다 9973억원이 추가된 규모의 대책을 마련했다. 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다음 달 내놓을 계획이다. 한 · 중 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업은 굉장히 큰 파도를 맞게 된다. 체결 전에 실무 협의 단계에서부터 농업의 민감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우리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해 나가도록 하겠다. "

▼농협법 개정안 국회 통과 가능성은.

"농협을 신용(금융) 부문과 경제(유통) 부문으로 분리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연말까지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설명하고 있다. 정부와 농협 간에는 큰 이견이 없다. 야당도 일부 보완할 점이 있다는 입장이고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연내 통과될 것으로 본다. "

정종태/유승호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