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영국의 면직 · 석탄 · 제철산업 등이 주도한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은 분업화와 기계화를 통해 생산성을 크게 신장시켰다.

때마침 중남미 식민지에서 들여온 대량의 은이 화폐 유통량을 크게 늘림으로써 시장과 유통부문은 이미 대규모 상품거래를 감당할 만큼 발달해 있었고,또 영농기술의 발전으로 농촌 소득도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 물량은 어려움 없이 유통되었고,이에 따라 분업화와 기계화의 생산방식은 빠르게 제조업의 다른 부문으로까지 확산됐다. 가내 생산이 어려운 특수 제품을 제외한 식품과 직물 등 생활용품을 직접 생산해 오던 일반 농가들이 자가 생산을 접고 시장의 공산품을 구입하면서 상업농에 전념하는 생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전통적 농경사회가 사회적 분업의 시장경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변화를 산업화라고 한다.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이탈,제조업 근로자로 변신했다. 과거에는 각자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농사지어 조달하는 농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산업화 이후에는 식량 생산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인구가 더 많아진 것이다. 한국만 해도 60%(1960년)이던 농업인구가 8.3%(2001년) 로 줄었다. 그런데도 농업생산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늘었다. 세계적으로도 지난 200년 동안 인구는 8배 늘었지만 식량 생산은 10배 증가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크게 줄었는데 식량생산이 오히려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펌프를 만들어 물을 퍼 올리고,화학비료의 성능을 개선하며,육종학이 우량 품종을 계속 개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펌프,농기계,비료를 생산하고 우량 품종을 개발하는 활동은 농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농업에 직접 종사하는 농민들이 직접 이 모든 활동을 담당했지만 산업화 이후 사회적 분업체제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농업 외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식량생산을 증가시킨 힘은 사회적 분업의 높은 생산성이다.

수확체감의 법칙에 함몰돼 경제성장은 결국 전 인구를 생존 가능한 최저 생활수준의 정체상태로 몰아넣고 말 것이라고 예측한 맬서스 (Malthus)는 격동의 산업혁명기를 살면서도 사회적 분업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몰랐던 것 같다.

환경과 자원의 유한성 때문에 경제성장이 결국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산업화가 구축한 사회적 분업체제는 생산에서 연구 · 개발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의 생산성을 계속 혁신하면서 성장을 주도해 왔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