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에서 의결받아야 할 사항을 임의로 추진하다 사후에 추인받는 재건축 · 재개발 조합 임원에 대한 형사 판결이 법원마다 엇갈리고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85조5호'에 따르면 조합 임원이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추가 사업비용 부담,시공자 선정 및 변경 등 법에 정해진 특정 사안을 추진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정비사업 실무 관행상 조합장이 대표로서 먼저 계약을 체결하고 사후에 일괄해 추인을 얻는 총회를 개최하거나 서면결의를 받는 경우가 많아 형사처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김경호)는 총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시공계약을 체결한 혐의(도정법 85조5호 위반)로 기소된 경기도 광명시 철산주공3단지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장 이모씨(53)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철산주공3단지 조합은 앞서 2005년 12월 총회에서 시공사에 낼 총 공사비와 사후 관리 등을 내용으로 한 '시공사 본계약서안'을 조합원 51%의 동의로 통과시키고 2006년 5월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 "시공사와의 계약에 포함될 내용은 도정법상 조합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해 51% 동의는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형사고소했고,이씨는 지난해 2월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총회 이후 동의서를 제출해 이씨가 시공계약 체결 당시 총회 의결을 거쳤다고 오인할 만했다"며 무죄 선고했다.

반대로 도정법 85조5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합 임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최근 상급심에서 유죄를 확정받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서울 황학구역 재개발조합의 조합장 조모씨(68) 등 조합 임원 3명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2심 판결에 대해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조씨 등은 2007년 12월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조합 상가의 인테리어를 공사비 91억여원에 계약체결해 기소당했으나,지난해 8월 1심에서 "공사 종료 후 정기총회에서 사후 추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심과 대법원은 그러나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액수를 사전에 개략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해 3월 조합 임원 선임을 위임받는 내용의 총회 결의를 통과시켜 임원을 선임한 서울 잠실동 A아파트 재건축 조합장 김모씨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조합 임원 선임을 위임받는 총회 결의는 도정법에 반하기 때문에 결의 없이 임원 선임을 추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민사상으로는 총회 결의사항에 대한 사후 추인은 2009년 6월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형사상으로는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공사비 증액 등 사항을 추진해 사후 추인을 받거나 법과 어긋난 결의사항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에 대해 법원 판결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 조항의 '총회 결의'와 관련된 부분이 다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며 "도정법 형사처벌 조항을 명확히 가다듬어야 현장에서 혼란이 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재개발 · 재건축,주거환경개선 등 도시재정비 관련 사항을 규정한 법률이다. 제24조3항에서는 정관 변경,자금의 차입과 방법 · 이율 및 상환 방법,정비사업비의 사용,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시공자 · 설계자 등의 선정 및 변경,조합 임원의 선임 및 해임,정비사업비의 조합원별 분담 내역 등의 사항을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정하고 있다.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이들 사업을 임의로 추진하는 조합의 임원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