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4ㆍ끝) 해외건설 시스템 갖춰야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공사를 따냈다는 소식이 하루에 한 건꼴로 들려옵니다. 양적으로는 수주 물량이 많이 늘어난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대형 건설사 해외건설부문장)

국내 건설사들은 올 상반기 364억달러어치의 해외 공사를 수주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8% 늘어난 액수로 정부의 올해 목표치 600억달러의 60.6%에 해당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 한해 해외 수주액은 728억달러가 된다. 원화로는 87조4000억원가량으로 올 예산 292조9000억원의 30%에 이른다.

수주 액수는 늘었지만 건설사들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다. 과당 경쟁으로 이익률이 높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한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는 "해외 수주 공시가 뜨면 매출보다 이익률부터 확인한다"며 "수주 사실이 악재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동 · 플랜트 · 대형사 편중 심각

해외 수주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지역 · 일감 · 업체 편중이 심하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중동지역 수주액은 259억달러로 전체의 71.3%를 차지한다. 반면 유럽 · 남미 · 북미 · 아프리카는 7% 정도에 불과하다. 일감도 플랜트 일색이다. 상반기 플랜트 비중은 84.4%며 초고층빌딩 등 건축은 8.7%다. 올 상반기 해외 수주 상위 5개사(하청 포함)의 수주액은 300억달러로 전체 수주액의 82%를 차지했다.

대형 건설사 해외사업본부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높아진 국제 유가를 발판삼아 중동 국가들이 발주한 석유화학 플랜트를 수주했기 때문"이라며 "중동 경기에 국내 건설업계가 목을 매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과당 경쟁으로 저가 수주 여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저가 수주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최근 한 국내 건설사가 따낸 아시아지역 국가의 공사에는 건설사 3곳이 참여했는데 두 곳이 국내 대형사,한 곳이 중국 건설사였다. 입찰 직전 포기한 회사도 국내 P사였으니 사실상 국내 건설사 간 경쟁이었던 셈이다.

한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는 "국내 건설사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입찰 때 얼마를 써 넣을지도 훤하다"며 "발주처가 가격 인하를 시도하면 결국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가격을 낮추게 된다"고 전했다.

삼성물산이 두바이에 건설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칼리파(124층)의 시공금액은 4억달러였는데 이는 미국 아이엠페이사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가져간 설계 용역비 3억달러와 비슷하다. 삼성물산이 자체 설계가 가능했다면 수주금액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해외 수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중국 등의 추격에서 절대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4ㆍ끝) 해외건설 시스템 갖춰야

◆해외 건설 시스템 마련해야

해외건설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982년 17만명이었던 해외 파견 인력이 작년엔 8979명으로 줄어 인력 충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해외건설협회가 지난해 12월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3년간 6000여명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 간 인력풀을 만들어 상호 교환하며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정보 네트워크 구축도 시급하다. 해외건설협회는 지난 4월 멕시코 가나 인도 캄보디아 등에 지부를 개설했지만 입찰 정보를 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주공사 지급보증과 글로벌 인프라펀드 조성 등 금융부문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김종환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본부장은 "인력 정보 금융 등에 대한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면 해외 수주 호황도 언제든지 끝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