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정책 방향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주택시장의 침체와 이에 따른 건설업 구조조정은 감내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주택 거래가 끊기면서 겪는 실수요자들의 고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지 않으면서 거래는 살려야 하는 모순된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주택가격 안정 기조가 지속돼야 한다"는 전제를 두긴 했지만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불편을 겪는 실수요자들을 살필 수 있도록 주거안정 측면에서 정책을 검토해 달라"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29일 월례토론회를 갖고 '주택시장 침체와 건설산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심각

토론 참석자들은 최근 주택시장과 건설경기가 상당히 침체됐다는 데 동감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수주가 많은 대형 건설사와 4대강 등 재정투자의 수혜를 받는 영세 건설사들을 제외한 중견 건설회사들이 쓰러지고 있다"며 "최근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 16개 중 9개가 시공능력 100위 이내 업체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 교수는 최근 발표한 구조조정 조치 이후에도 건설업계의 부실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당수 건설사들이 미분양보다 충격이 더 큰 입주율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업체들도 미착공 프로젝트가 많아 언제든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사들의 잘못된 경영 행태와 이를 제지하지 못한 정책 실패가 지금의 침체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부의장은 "주택경기가 좋을 때는 이익을 챙기고 어려울 때는 손실을 사회부담으로 돌리는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며 "정부 역시 일관된 정책으로 시장에 그릇된 신호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주택 시장이 올 하반기부터는 회복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 교수는 "주택 시장의 침체는 미분양 소화 등을 거쳐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다"며 "긴 어둠의 터널의 반을 지나 '나머지 반'의 반을 지나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구조조정 고통은 감내해야

참석자들은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면서도 건설업 구조조정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태정 우리금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 부동산이 가격 조정을 겪었는데 한국은 거의 조정이 없었다"며 "지금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상덕 중앙대 객원교수(전 한은 감사)는 "지금과 같은 위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똑같이 겪었던 일"이라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는 건설사들이 너무 많은 만큼 시장논리에 맞춰 일부를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효욱 전 중소기업중앙회 상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견 건설사들은 그린홈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바라는 시장 안정과 주택거래 활성화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건설업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분양가 상한제 등 제도 정비해야

구조조정과 더불어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의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폐지가 가장 절실한 것으로는 분양가 상한제가 꼽혔다.

지 교수는 "민간 건설사들이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공급하고 싶어도 분양가 상한제가 가로막고 있다"며 "상한제를 없애 건설사들이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도 "예컨대 3000채의 분양승인을 받으면 한꺼번에 3000채를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주택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주택공급규칙을 이제는 정비할 때가 됐다"며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대출 규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 교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금융시장의 건전성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자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거래활성화 차원에서 미세 조정을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송 수석연구위원은 "DTI의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국세청에 신고하는 소득 등으로만 따지지 말고 자산 등 세심한 부분까지 감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성훈 자스경제연구원장(RTN 부동산TV 앵커)은 "DTI와 담보인정비율(LTV)등의 제도를 유지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대출지역이나 소비자 성향,상환시기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