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초기 소비자들은 고급 마차와 동일한 귀족이었다. 미국 헨리 포드가 대량생산 방식을 활용,자동차를 대중화했지만 '귀족만을 위한 차'는 끊임없이 출시됐다. 남들보다 크고 좋은 차를 타려는 인간의 욕망이 그치지 않아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선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재규어가 귀족차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영국 왕실 의전용 차로 사용돼 왔다. 이 업체들은 극소수의 소비자를 겨냥한 차만을 고집하며 브랜드 자존심을 지켜왔다. 특히 롤스로이스는 '실버 고스트'나 '팬텀' 등 차명(車名)이 주로 '유령'을 뜻한다. 차 안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숙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벤틀리도 롤스로이스 못지않은 영국 왕실 전용차다. 특히 몇 해 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와 과거 벤틀리를 만들던 유명 수공 기술자 20여명이 공동으로 참여해 왕실만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와 방탄,그리고 첨단기능을 적용한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영국 왕실의 자존심이라면 미국에는 캐딜락과 링컨이 일찌감치 대통령 자동차로 명성을 떨쳤다. 1912년 올즈모빌에 엔진부품을 공급하던 헨리 릴랜드가 설립한 캐딜락은 미국 내 최고급 자동차로 출발했다. 미국 신대륙을 개척한 모스 캐딜락 장군의 이름을 차명으로 사용한 것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서였다. 헨리 릴랜드는 동업자 윌리엄 듀란트와 의견이 맞지 않아 회사를 떠났지만 캐딜락은 계속 남아 미국의 대표 고급 브랜드로 성장했다.

GM을 떠난 헨리 릴랜드가 1920년 만든 링컨은 캐딜락의 대항마로 포드에서 키워낸 브랜드다. 1931년 발표된 '링컨 K시리즈'는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섀시 중 하나로 평가받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 전용차로 채택되기도 했다. 2차 대전 영웅 맥아더 장군 또한 링컨을 자신의 공식 전용차로 사용했다.

영국 미국과 달리 독일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강세다. 설립 초창기부터 세계 최고급 메이커로 알려지면서 각국 부호와 대통령 전용차로 인식돼 왔다. 과거 히틀러 또한 벤츠 770 리무진을 전용차로 이용할 만큼 메르세데스 벤츠에 대한 로열티가 높았다. BMW,아우디,폭스바겐 등이 고급차 지존에 도전장을 던지자 '마이바흐'라는 호화 럭셔리 브랜드로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각국의 명차들은 대부분 최상류층이 이용한다. 귀족이 애용해서 명차가 됐는지,아니면 명차여서 귀족이 선호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양쪽 모두 서로의 필요에 의해 명차를 만들고,애용했던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왜 고급 브랜드가 없을까. 뒤늦은 역사 탓이 크다. 명차에 있어 늘 빠지지 않는 항목,'전통'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품질은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전통이 불가항력이라면 제품력으로 전통을 뛰어넘으면 된다. 도전정신은 그래서 필요하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