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다. '감성마을 어귀에 새겨진 글귀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글자 그대로 나무가 많은 마을.작가 이외수씨(64)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나무가 무성했다. 집필실 앞 연못 몽요담(夢謠潭) 위로 산벚꽃잎이 흩날렸다. 꿈과 노래의 의미를 합친 이 연못은 이씨의 트위터에도 등장한다. '새도록 빗소리 후둑거리더니 몽요담에 산벚꽃잎 하얗게 덮였구나. 꽃 진다고 어찌 애석해 하랴.머지않아 꽃 진 자리마다 보석 같은 열매들 빛날 터인데.'(5월18일 새벽 1시41분,twitter.com/oisoo)

그가 지난 2년간 트위터에 올린 글 2000여편 중 323꼭지를 추리고 '평생 친구'인 화가 정태련씨의 그림과 함께 펴낸 신작 《아불류 시불류(我不流 時不流)》(해냄출판사)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전국 베스트셀러 14위에 오른 데 이어 이번 주에는 4위까지 치솟았다. 요즘같은 출판 불황에 하루 1만부 이상이면 초대박이다. 하긴 누적 판매부수 800만부를 자랑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셋방살이 13년 만에 집 사고 빚 갚으려 쓴 작품이 '칼'

[파워 인터뷰] 소설가 이외수씨 "사람이 확 달라지는 1박2일 감성체험마을 만드는 게 꿈이죠"
그러나 그는 43세 때까지 굶기를 밥먹듯 했다. 하도 가난해서 부인이 친정에서 온갖 것들을 '훔쳐다 나를' 정도였다. 글이 써지지 않아 술로 밤을 지새웠고 기인과 광인의 경계를 오갔다. 결국 부인의 우울증이 심해졌고 몸져 눕게 됐다.

"어느날 정신과 의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당신 부인이 가정생활도 못하고 사회생활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데 소설만 쓰고,술만 마시고 있느냐….입원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가봤는데 폐쇄병동에 넣으면 더 심해질 것 같았어요. "

뜨끔해진 그는 집을 사서 환경을 바꾸면 괜찮을 것 같아 온갖 짓 다해서 400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가장 싼 집도 1100만원이 넘었다. "나를 이해하면서 돈도 있는 사람을 찾아보다 당시 '여원'의 김재원 사장에게 가서 사정을 말했죠.비 새는 방에서 4식구가 사는데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 지금 400만원으로 3700만원짜리 집을 덜컥 계약하고 왔는데,중도금 안 갚으면 400만원까지 날아간다. 그래서 2000만원만 빌려주면 은행에 집 잡히고 빚 갚겠다 했죠.어이없어 했지만 일주일 뒤에 계약서를 들고 왔더라고요.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부터 찍었죠.그걸 갚기 위해 쓴 작품이 《칼》인데 나중에 그 분은 나한테 꿔준 돈의 21배를 벌었죠.하하."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원수'라고 표현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평생의 절반을 굶었기 때문에 오히려 돈의 가치를 더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친동생인 이창훈씨가 푸르덴셜자산운용 사장이다.

"한국 사람의 공통점이 돈을 욕한다는 겁니다. 원수놈의 돈,썩을놈의 돈….그런데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욕을 하면 안 옵니다. 돈을 모으려면 돈하고 성정이 같아져야 해요. 저도 집 때문에 애먹을 때 1원짜리부터 만원짜리까지 다 모아놓고 날마다 내려다보면서 돈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돈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굉장히 예뻐요. 훌륭한 도안사들이 만들었거든요. "

처음엔 '절망' 그 다음엔 '구원'… 이젠 '행복'을 쓸 겁니다

그도 젊을 때에는 '절망'을 얘기했다. 작품도 거대한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좌절하는 인간을 다뤘다. 그러다 차츰 '구원'에 관심을 가졌고 '출구'를 찾게 됐다. 앞으로는 '행복'에 대해 쓸 생각이다. "처음에는 절망,그 다음에는 구원,이제는 행복이 뭔가,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행복에 대한 개념 정립을 소설로 해보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개안론'을 얘기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행복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는 눈. 형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육안과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뇌안,마음의 창으로 보는 심안,그리고 영혼의 소통 창구인 영안.

"영안이라는 걸 개안하게 되면 우주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만물을 공통된 하나의 사랑으로 보고,탐복하는 눈.이걸 뜨면 세상 만물도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죠.네 개의 눈을 샘플로 등장시켜서 아주 현실감 있게 가장 행복한 캐릭터를 만들어 볼 겁니다. "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이번 에세이집 제목인 《아불류 시불류》도 그런 맥락이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아마 내년쯤이면 새 작품을 볼 수 있을까. 그는 '감각이 둔해서 오래 걸린다'고 했다. "제가 굉장한 감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아는데,그거 다 쥐어짜가지고 나오는 거니깐, 트위터에서 일곱 번 수정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화를 내요. 똑같은 것 일곱 개나 올린다고. 거의 같은 게 있는데 잘 보시면 다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똑같은 것 올라오면 숨은 그림 찾듯이 재미있대요. "

그는 오는 9월쯤 전시관이 완공되면 글과 그림과 음악까지 아우르는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더 큰 꿈은 따로 있다. 1박2일이나 3박4일쯤 왔다 가면 사람이 확 달라지는 '감성체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

"감성체험 공간을 전체적으로 만들어 갈 거거든요. 그게 이제 주력 사업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자체예요. 돈이 좀 확보가 되면 땅을 사야하니깐.부지가 확보되면 여러 시설물도 갖춰야 하고….오래 걸릴 것 같아요. "

그는 "실제로 1박2일 후에는 인생이 달라지는 걸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러 아이디어도 있고 해서 그건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라는 그의 명문장이 우리 사회에 또다른 길을 낼 차례인 것 같다.

만난사람=고두현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