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LG디스플레이 성장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LCD(액정표시장치)패널 판매량과 수익률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지만 품질 등 모든 면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해야 정글 게임에서의 승세(勝勢)를 굳힐 수 있다. "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생산공장 증설계획을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갖은 노력 끝에 오른 글로벌 1위 수성(守城)을 위한 새로운 여정(旅程)의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주요 상장기업들이 앞다퉈 '어닝 서프라이즈'를 쏟아낸 1분기 실적경쟁에서 특히 주목을 끈 회사가 LG디스플레이였다. 판매 수량은 물론 영업이익률,영업이익 규모 등에서 비교적 큰 차이로 경쟁회사인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 · 필립스 · 파나소닉 · 도시바 등 기존 고객에다 애플 · 비지오 등 최근 급성장한 신규 고객을 추가로 확보한 덕분이다.

4만5000원을 넘나드는 LG디스플레이의 주가도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52주 최고가에 근접할 만큼 상승했다. 하지만 권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한다. 문학삼 IR담당 상무는 "현재 주가는 저평가된 상태"라며 "주식 평가 기준을 자산이 아닌 수익으로 바꾸면 앞으로 두 배가량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회사 'LG필립스LCD'로 출범한 이후 크게 세 차례의 변곡점을 겪었다. 글로벌 도약의 지렛대였던 2004년 한국 · 미국 증시 동시 상장,대형 TV 시장 진입 초석이 된 2006년 파주 일관생산체제 구축,2008년 LG디스플레이로의 홀로서기(필립스와 결별)는 이 회사에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2000년 세계 최초로 4세대 생산라인 투자를 단행하고,2003년 초에는 처음 세계 1위(분기 출하량 기준)에 오르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당시 구본준 사장(현 LG상사 부회장)은 집무실에 주요 임원들을 모아놓고 사업 진출 8년 만의 세계 1위 달성을 자축했다. 그해 매출도 6조980억원,영업이익은 1조97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였다. 하지만 2003년 실적을 올해 예상치와 비교하면 LG디스플레이가 그동안 얼마나 비약적인 성장가도를 달려왔는지 알 수 있다. 증권가가 예측하는 2010년 매출은 26조원,영업이익은 3조4000억원에 달한다. 7년 전에 비해 매출은 4배,영업이익은 3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아이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구본무 LG 회장이 권 사장 얼굴만 보면 환해지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LG디스플레이가 스스로 올해를 또 한번의 변곡점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하드웨어 구축 및 기술력 확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에서 향후 질적 성장을 동반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넘버원'으로 진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공장을 누가 먼저 짓느냐,어느 정도 규모로 투자를 할 것이냐의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품질과 생산성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것.일단 1분기 실적 경쟁에서 기선을 잡은 게 자신감을 안겨주고 있지만,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게 디스플레이 사업이다.

LCD 사업은 수요가 좋을 때와 나쁠 때 수익에 큰 격차를 보여 일명 '사이클 산업'으로 불려왔다. LG디스플레이 주가도 공급부족이던 2007년 11월 5만8700원까지 올랐다가 공급과잉이 빚어진 2008년 10월에는 1만4400원까지 내려앉았다. 애널리스트들이 LCD업체를 평가할 때 주가수익비율(PER) 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먼저 따지는 것은 이같은 사이클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적정 주가를 산정하는 기준도 바뀔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학삼 상무는 "과거에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수요의 90%를 의존하다 보니 경기 부침에 따라 실적의 기복이 심했지만,요즘 중국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이 급성장하면서 성수기-비수기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면 중국 춘절,노동절 수요가 생기고 9월에는 인도의 선물 시즌이 열리는 등 수요 패턴이 계절성을 탈피하고 있다는 것.PER 기준으로 평가하면 LG디스플레이 주가는 대만 AUO · CMI 등 경쟁업체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LG디스플레이는 질적 성장을 위한 또 다른 도전으로 올해 세트 사업에도 나섰다. TV,모니터 등을 직접 만들어 세트업체에 납품하는 ODM(제조자설계생산) 사업에 진출한 것.3분기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양산에 나서고 e-페이퍼(전자책) 분야에선 세계 최초로 컬러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권 사장은 "기술축적,고객 확보 등 모든 측면에서 올해부터 모바일 OLED에서 승부를 볼 때가 됐다"며 "하반기에는 새로운 고객 확보 차원에서도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