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적극 검토' 지시로 한 · 중 FTA(자유무역협정)가 강한 추진력을 받게 됐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한 · 중 교역액은 1410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교역액의 20.5%에 달한다. 미국(9.7%)과 일본(10.4%)을 합친 것보다 높다.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 비중도 지난해 26.7%에 달했다.

교역 규모나 수출 비중만 보면 한 · 중 FTA가 한 · 미 FTA보다 먼저 체결됐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중국도 2002년부터 한국에 FTA 체결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중국과의 FTA에 소극적이었다. FTA 체결로 관세장벽이 낮아지면 경제 전체로는 득이 될 수 있지만 업종별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반도체 휴대폰 LCD(액정) TV 자동차 등 주력상품의 경우 수혜업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산 저가제품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는 데다 특히 농수산물 분야에 큰 피해가 우려되는 점은 부담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은 2007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양국 정부,산업계,학계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5차례나 '한 · 중 FTA 산 · 관 · 학 공동연구'를 진행해놓고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동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양국 간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하던 한 · 중 FTA 논의가 되살아난 것은 최근이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한 · 중 FTA 추진 여건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그동안 진행된 산 · 관 · 학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양국 간 견해차를 좁히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FTA 교섭대표는 "한 · 중 FTA의 실익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연구를 올해 상반기 중 마무리지을 방침"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손익을 계산한 뒤 협상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협상 개시를 위해서는 공청회와 통상교섭본부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FTA 추진위원회,기획재정부장관이 위원장인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적극적인 검토를 강조한 만큼 이르면 올해 하반기쯤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이처럼 한 · 중 FTA에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칫하면 중국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중국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홍콩 마카오 등 7개국과 FTA를 체결한 데 이어 최근 대만과도 FTA에 버금가는 경제협력협정(ECF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양국은 지난 1월 협상을 시작했음에도 오는 6월께 기본협정 체결이 예상될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실제 한국산 디지털TV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2008년 12.2%에서 지난해 7.7%로 급감한 데는 '차이완(중국+대만)' 효과가 컸다. 대만 업체가 중국 현지 업체와 제휴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면서 한국 제품을 밀어낸 것이다.

둘째 미국에 대한 '간접 압박' 효과다. 한 · 미 FTA는 체결된 지 이미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미국 의회 비준이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 · EU(유럽연합) FTA가 발효되고 한 · 중 FTA마저 체결될 경우 미국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 방문 때 워싱턴포스트와 회견에서 "한 · 미 FTA는 중국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한 · 미 FTA 비준을 위해 한 · 중 FTA가 가장 유효한 카드"라고 말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