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쌀에 대해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량을 늘리는 대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수입이 억제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농민단체 등의 반발에 밀려 관세 부과 방식의 시장개방에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 대신 농업계에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더 이상 쌀 관세화를 늦출 수 없다고 보고 올해를 합의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쌀 관세화 필요

한국은 1995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쌀에 대해 '관세화 예외'를 인정받았다. 2004년 이를 한 차례 더 연장해 2014년까지 관세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쌀 시장 개방을 늦춰 국내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개방을 늦춘 대가로 의무 수입 물량이 매년 늘어나는 데다 2008년부터 연이은 풍년까지 들어 공급 과잉이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관세화 전환 시기를 올해에서 내년으로 늦추면 900억~16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쌀 조기 관세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쌀 조기 관세화는 2014년까지 유예돼 있는 쌀시장 개방을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쌀에 관세를 부과하는 대신 누구든 마음대로 쌀을 수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민간이 쌀을 수입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 개방에 따른 타격을 우려하는 일부 농민단체들의 반대로 작년에는 관련 토론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결국 조기 관세화 추진은 불발로 끝났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말 민 · 관 합동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산하 쌀특별분과위원회 주최 토론회가 열리긴 했지만 여전히 찬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간 농업연구소인 GS&J의 이정환 이사장은 "쌀값이 단기 반등할 수는 있겠지만 의무 수입 물량이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수급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조기 관세화를 빨리 결론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가능할까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국내 쌀 산업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당장은 고율의 관세가 부과된 수입쌀에 비해 국내 쌀의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국제 쌀 가격이 급락할 경우 수입이 급증,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쌀 산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장기적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고,국내 농가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국제 쌀값은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농업 경제를 불확실성에 맡긴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는 쌀 시장을 관세 부과 방식으로 개방해도 농업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일본 대만 등의 사례를 보면 반대논리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을 개방해도 품질 경쟁력을 갖춘 국내 쌀이 수입 쌀에 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미국 쇠고기 수입을 허용해도 한우 시장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조기 관세화가 영세농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쌀 소득보전 직불제가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쌀 전업농 단체는 관세화에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