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매경기에서 타점 한 개만 올려도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경기당 평균 타점이 1점을 넘긴 선수는 2003년 이승엽(당시 삼성, 144타점)과 심정수(당시 현대, 142타점) 밖에 없다.

이승엽과 심정수는 당시 133경기를 치르면서 경기마다 각각 1.08개, 1.07개의 타점을 올렸다.

올해 롯데 홍성흔(33)의 페이스는 2003년 이승엽의 페이스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아직 시즌 초라 18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경기당 1.67개씩 타점을 올려 벌써 30타점 고지에 올랐다는 점은 입이 벌어질 만하다.

무서운 속도로 타점을 쌓아 '타점 기계'라는 별명이 붙은 홍성흔의 상승세가 과연 어디까지 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최다 타점 도전
홍성흔의 페이스가 얼마나 가파른지는 19일 현재 타점 순위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홍성흔의 절반인 15개에 그친 최정(SK)이 상위권인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대호(롯데)가 20개로 2위에 올랐지만, 홍성흔에는 10개나 모자란다.

30타점은 이번 시즌 팀 타점 꼴찌인 KIA의 전 타자가 올린 59타점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치다.

소속팀 롯데에서는 팀 타점(89점) 가운데 ⅓가량을 차지한다.

홍성흔은 산술적으로 이번 시즌 221타점까지 작성할 수 있다.

지금 같은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이승엽이 세운 시즌 역대 개인 최다 타점은 노려볼만하다.

이에 대해 홍성흔은 "지난해 타격 2위에 오를 때도 일부러 타격왕을 노리지는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라면서 "지금 타점왕 등을 논하기에는 이르다.

그냥 주자가 있을 때 열심히 치면서 팀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은 이렇지만 조금씩 개인 타이틀 획득에 대한 의욕도 불사르고 있다.

타격 장갑과 방망이 아래 바닥 등에 한자로 '왕(王)'을 새겨 놓고 자극제로 삼고 있다.

타점과 함께 홍성흔은 홈런 2위(5개), 안타 공동 2위(25개), 타격 2위(0.368) 등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타점이 아닌 다른 부문에서도 개인 타이틀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똑딱이 타법에서 호쾌한 장타 스윙으로
홍성흔은 최근 몇 년간 타율은 높았지만 '찬스에 약한 타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2008년 두산 시절 타율 0.331을 때렸지만 타점은 63개에 그쳤고, 롯데로 옮긴 지난해에는 타율이 0.371로 치솟았지만 타점은 64개였다.

와중에 병살타는 2008년 전체 2위인 16개나 쳤고 2009년에도 15개를 때리면서 많은 찬스를 날렸다.

주로 중심 타선인 5번을 맡은 탓에 타율에 비해 팀 공헌도가 낮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자존심이 상한 홍성흔은 절치부심했다.

짧게 밀어치는데 능했던 홍성흔은 지난 겨울 '타구를 멀리 보내 타점을 올리겠다'고 다짐하고 타격자세를 손댔다.

무게중심을 투수 쪽으로 두고 웅크리면서 밀어쳤던 홍성흔은 허리를 세우고 힘을 실어서 방망이를 휘둘렀다.

무게중심을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면서 하체를 이용해 타구에 힘을 실으려고 노렸다.

폴로 스루를 끝까지 끌고 갔다.

프로 데뷔 10년이 넘은 타자가 타격 자세를 바꾸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김무관 롯데 타격 코치도 "코치직을 걸고 홍성흔의 타점 생산 능력을 높이겠다"며 홍성흔의 '변신'을 거들었다.

하지만 시범경기 때는 부진했다.

11경기에서 타율 0.162에 1홈런, 3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래도 홍성흔은 "아직 타격 자세가 완성단계가 아니다"라면서 훈련에 매진했다.

정규 시즌이 막을 올리자 홍성흔의 '도박'은 마침내 성공했다.

홈런 5개를 펑펑 날려대며 장거리포 타자로 완벽하게 거듭났다.

홍성흔의 변신은 18일 두산과 경기에서 홈런을 친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5회 켈빈 히메네스의 초구를 골프채 휘두르듯이 퍼 올렸다.

헛스윙한 방망이는 크게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홈플레이트 부근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홍성흔은 곧이어 몸쪽으로 파고드는 싱커를 같은 궤적의 스윙으로 쳤다.

제대로 걸린 타구는 하늘 높이 힘차게 솟구치다가 왼쪽 관중석 중간에 떨어졌다.

◇긍정적인 성격도 한 몫
홍성흔은 지난해 초에도 타격자세를 고치려다 실패한 바 있다.

크게 쳐서 타점을 높이겠다는 같은 이유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을 겪은 끝에 원래 자세로 돌렸다.

지난 시즌 높은 타율을 올려 만족할만했지만, 홍성흔 올해 굳이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모험에 또 도전했다.

두 차례 도전 끝에 끝내 성공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홍성흔의 낙천적인 성격이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30년 가까이 롯데 경기만 해설하는 이성득 부산방송 KNN해설위원은 "홍성흔의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타격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한 시즌을 소화하다 보면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슬럼프를 겪기 마련인데 홍성흔은 밝은 성격 덕에 빨리 부진을 털고 일어선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이어 "물론 홍성흔이 타격 자세 교정을 시도한 지 2년 만에 성공한 것은 타고난 타격 자질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불과 몇 달의 훈련을 통해 20년가량 몸에 밴 타격 자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타고난 타격 소질과 성격이 잘 결합한 덕분에 올해 같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홍성흔은 "지난해는 중심타자로 뭔가 보여주려고 4월까지 무턱대고 크게 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4월 이후 밀어치면서 타격감각을 찾았다"며 "올해는 지난해 초의 큰 스윙과 중반 이후 밀어치기의 중간 정도로 휘두른다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