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대우자동차판매 등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의 변수로 떠올랐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호산업의 CP를 보유한 개인투자자 130여명은 약 1300억원에 달하는 투자원금과 이자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들에게 △투자원금 80% 지급,20%는 출자전환 △원리금의 1년 거치 2년 분할상환 등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채권 처리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협상이 타결된 인원은 30여명 남짓에 불과한 상황이다.

개인 투자자는 채권단이 추진하는 워크아웃 계획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협약 채권자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들 투자자 중 일부는 워크아웃 신청 하루 전에 CP를 매입하거나 10억원까지 투자 하기도 했다"며 "선의의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호타이어 역시 개인이 매입한 CP금액만 4000억원이 넘어 금호산업과 비슷한 처지다. 순수 개인 투자자 이외에 증권사 특정금전신탁과 펀드 등을 통해 간접 매입한 경우도 많아 일괄 협상이 어려운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들 중 일부는 30% 이상의 수익률을 노리고 투기적인 거래를 한 '꾼'들"이라며 "구제될 것을 예상하고 CP를 사들인 행위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말 금호그룹 계열사는 금리 연 9~11%의 1~3개월짜리 CP를 대거 발행했으며 워크아웃 신청을 전후해 명동 등지의 사채시장에서는 액면가보다 20~30% 할인된 가격에서 CP가 거래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금호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도 채권단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원리금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약점을 노리고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과 대우자동차,SK네트웍스,LG카드 등 구조조정 기업을 회생시키는 과정에서 이들 기업의 CP를 매입했던 개인들중 대우차 투자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원리금을 다 챙겼다는 점도 이 같은 투자를 부추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경우 은행 등 금융권은 채무 탕감을 해주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전부 보상받았다는 선례가 구조조정 채권에 대한 투자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금호산업의 경우 이미 채권단이 2조50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한 상태여서 '판'을 깨기에는 손실부담이 커 협상의 주도권이 개인 투자자에게 넘어간 상태다.

워크아웃이 임박한 대우자동차판매 역시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권 여신이 1조3000억원인 반면 개인 투자자가 보유한 CP 등 채권 금액만 43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 측은 "대우자판의 경우 금호와 달리 개인 채권비중이 30%를 넘어 원금 부분 탕감과 이자면제 등 채권단과 비슷한 조건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막바지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기업이 무더기로 발행한 어음이 수익률 높은 투자상품으로 각광받는 잘못된 '학습효과'가 생기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