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9일 평소처럼 오전 7시반께 서울 연지동 사옥으로 출근했다. 현 회장은 이날 오전 간단하게 대책회의를 열고,하루종일 12층 집무실에서 '칩거'했다. 현대 사옥엔 대북사업이 장기 표류할 수도 있다는 답답함과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 대북전문가들은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정부 소유 부동산을 동결하고 금강산 관광계약 무효를 선언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좀처럼 관계개선을 위한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유연한 자세로 북측과 대화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젠 남북 당국 간 대화로 풀어야"

한 대북사업자는 "전쟁 중에도 협상 테이블은 있었다"며 "남북 당국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협상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 동결조치가 기업들의 재산권을 명백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또 다른 대북사업 전문가는 "이번에 북한이 부동산 동결을 시행하면서 개성공단사업 재검토까지 위협하는 사태로 악화된 것은 우리 정부가 상황을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현대아산이 1998년 11월 이후 금강산 관광 지구 등에 투자한 돈은 2269억원이다. 호텔,항만,발전기,도로 등 고정 자산이다. 협력업체들도 골프,온천장 건설에 1330억원을 쏟아 부었다. 현대아산은 2008년 7월 '박왕자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된 이후 매출 손실이 약 2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2002년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50년 장기 독점 계약을 맺었지만 현 시점은 그런 계약 관계를 따질 단계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북한 개입 논란까지 겹쳐 이른 시일 내 남북 대화가 열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 자산 동결조치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향후 대응 수위를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침몰한 천안함의 인양 후에나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의 남측 부동산 동결 조치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며 "금강산 · 개성관광 문제는 당국자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을 먼저 제의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개성공단도 흔들리나

앞으로 초점은 북한이 개성공단 철수까지 수위를 높여갈 지 여부다. 북한은 8일 "(남측이)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을 모독하고 대결의 길로 계속 나갈 경우 개성공업지구 사업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2008년 3월에도 당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문제를 거론하자 공단 내 상주인원 제한,남북 통행시간과 허용인원 축소 등 '12.1 조치'를 단행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협회 부회장인 유창근 SJ테크 사장은 "아직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사항이 없다"면서도 "남북관계가 급박하게 경색되면서 입주 기업들의 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의 연간 생산액은 2억5600만달러(작년 기준)며,북측 근로자만 해도 4만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 등 남북 교류가 뜸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과 북한 간 밀월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 인적 왕래는 금강산 관광이 35만명에 육박했던 2007년에 비해 35%가량 감소했고,인도적 대북 지원도 2008년 1163억원에서 작년엔 637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중국인들은 이달부터 북한을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이미 나진항 10년 임차와 신압록강대교 건설 등을 따냈고,북한 자원 개발에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자원 독점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북한이 중국 기업과 금강산 관광 계약을 맺었다는 풍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통일부 천 대변인은 "북한의 중국인 대상 여행상품은 기본적으로 평양과 판문점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련얘기도 있다고 듣고 있다"며 "중국관광 상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사실 관계를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동휘/장성호/고경봉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