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긴급 진단] 강남 큰손 "채권 50억 사달라"…0.1% 추가수익 찾아 '머니 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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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금리 3%대 하락' 후폭풍
예금금리 낮고 주식 올라 '머뭇'…국고채.하이일드채권에 돈 몰려
PB들 "돈굴리기 직므이 가장 힘들어"
예금금리 낮고 주식 올라 '머뭇'…국고채.하이일드채권에 돈 몰려
PB들 "돈굴리기 직므이 가장 힘들어"
#1.8일 서울 압구정동 하나은행 PB센터에 60대 중반의 노신사가 방문했다. 이 노신사가 보유한 현금은 정확히 10억원.은행에 넣자니 이자가 너무 낮고,주식에 투자하자니 주가가 너무 올랐고,그렇다고 부동산도 당분간 전망이 없어 보인다는 게 그의 고민이었다. 이에 담당 PB는 통안증권,지방은행 채권,해외 하이일드채권 등으로 구성된 PB전용 맞춤형 상품을 제시했다.
#2.10억원 이상 고객들을 관리하는 우리투자증권 명동 WMC지점에는 지난주 문의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개인도 증권사를 통해 국고채에 투자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담당 PB로부터 한 시간 넘게 설명을 들은 이 고객은 이틀 뒤 국고채 50억원어치를 사달라고 주문했다.
은행과 증권사 PB들이 고액 자산가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도대체 어디에 투자해야 하느냐"이다. 2~3년 전만 해도 단골 질문이 "어느 아파트가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으냐","어떤 운용사가 펀드를 가장 잘 운용하느냐"였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가장 투자하기 힘든 시기"
김진기 국민은행 대치PB센터 팀장은 최근 상황을 "역사상 투자자들의 고민이 가장 깊은 때"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김 팀장은 "2003,2004년에도 요즘처럼 정기예금 금리가 연 3%대로 낮았지만 당시에는 부동산 경기라도 좋아 그쪽으로 막대한 돈이 흘러들어갔다"며 "지금은 부동산도 당분간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데다 주가도 오를 만큼 올라 투자자들이 '사면초가'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자산가들이 철저히 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대기성 자금인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잔고가 41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그 방증이다. 또 최근 하루 5000억원 넘게 유출된 주식형펀드 환매자금의 일부가 증권사 고객예탁금으로 유입되고 있음에도 개인투자자들이 선뜻 주식을 사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송재원 신한은행 방배PB센터 팀장은 "연초에 장기투자 관점에서 주식형펀드 투자를 고민하던 고객들도 최근 펀드 환매 사태가 벌어지자 생각을 바꾸고 있다"며 "대부분은 3개월,6개월짜리 단기예금에 일단 돈을 넣어두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은행 PB센터 부지점장은 "한 고객이 양재동의 빌딩을 대출 끼고 80억원에 사려고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하반기 금리인상 불안감 때문에 포기했다"며 "저금리에다 '출구전략'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투자자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부동산에 관한 문의도 갖고 있는 부동산을 어떻게 팔 방법이 없겠느냐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수익률 0.1%가 아쉽다
채권시장에 끊임없이 뭉칫돈이 몰리는 것은 단 0.1%포인트라도 높은 수익을 찾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진기 팀장은 "현재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이 연 3.8% 내외로 정기예금 금리(연 3%대 초 · 중반)와 차이가 크지 않지만 그 정도라도 챙기겠다는 고객들이 많다"며 "특히 채권은 중간에 채권값이 오르면(시장금리가 하락하면) 양도차익을 얻고 돈을 뺄 수도 있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국고채 투자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은 굴리는 돈이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그야말로 '큰손'들이다. 투자규모가 작은 고객들은 소매채권시장에서 비우량 회사채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김성동 신한금융투자 강남명품PB센터장은 "우량 회사채 금리가 예금금리와 큰 차이가 없어 요즘에는 하이일드채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또 세(稅)테크 차원에서 세금 부담이 적은 지방개발채권도 종종 찾는다"고 전했다.
공모주,주가연계증권(ELS),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 등 '증시 틈새상품'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지점 PB팀장은 "지금은 장기투자보다는 공모주처럼 이슈가 있을 때마다 단기적으로 움직이는 '스마트 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며 "예전에는 ELS에 투자하는 고객들은 많아야 5억원 정도를 갖고 왔지만 최근에는 한번에 10억~20억원을 가져와 투자해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모주 청약은 작년 하반기 SK C&C의 청약증거금이 1조1267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대한생명 4조2198억원,차이나킹하이웨이 2조6795억원 등 돈이 몰리는 규모가 커지고 있다. 배종화 HMC투자증권 ECM팀장은 "공모주 투자는 1인당 투자한도가 있어 자산가들 입장에선 번거롭지만 이처럼 큰돈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류남현 삼성증권 테헤란지점 부장은 "지난달 29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글로벌 공모주펀드에 불과 일주일 만에 800억원 넘게 들어왔다"며 "60대 초반의 한 사업가는 20억원을 한목에 넣었다"고 귀띔했다.
김동윤/강현우/서보미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