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올 들어 3월까지 국고채 응찰률이 평균 310%로 작년 상반기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외국인 매수 등 수요 기반이 크게 확대된 데다 낙찰 방식 변경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진 결과다. 미국에서 국채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고채 응찰률은 작년 상반기 평균 129.8%에서 하반기 187.8%로 높아졌고 올 들어 1~3월 평균 310.5%로 치솟았다.

응찰률이 300%라는 것은 1조원 입찰에 3조원이 몰렸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달 실시한 6조740억원 규모의 국고채 입찰에서는 3년,5년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았던 10년,20년 장기물에도 수요가 대거 몰렸다.


유통시장에서도 국고채가 인기다. 최근 정부가 출구전략 본격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시장에서 확대 해석되면서 금리가 일시적으로 반등세를 보이긴 했지만 국고채 5년물의 경우 올초 연 5%가량이던 것이 최근 4%대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금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반대로 채권값이 올랐다는 얘기다.

국고채가 이처럼 '상종가'를 치는 이유는 무엇보다 수요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우선 글로벌국채지수(WGBI)에 조만간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한국 국고채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외국인이 올 들어 환헤지도 하지 않은 채 만기 10년 이상의 장기 국고채를 많이 사들이고 있다"며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견조한 성장률을 보이는 나라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수요도 몰리고 있다. 보험사들은 내년부터 본격 도입되는 위험기준자기자본(RBC) 제도를 앞두고 국고채를 사모으고 있다. RBC는 금융시장의 다양한 위험 요인을 반영해 안정적인 자기자본을 갖춰야 하는 제도로 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일치할수록 위험도가 낮아진다. 장기보험 비중이 높은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안전자산인 국고채 장기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담보대출 등이 힘들어진 은행도 마찬가지다. 자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자 안정적인 국고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상원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팀장은 "작년부터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이란 전망때문에 많이 내린 국고채를 은행들이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고채 발행 규모가 올 들어 줄어든 것도 요인이다. 국고채 발행 물량은 2008년 52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85조원으로 늘었다가 올해는 77조7000억원으로 8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든 셈이다.

또 정부가 작년 9월부터 국고채 입찰 방식을 참가자들이 써낸 가격에 근접하게 낙찰받도록 바꾼 것도 응찰률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국채 입찰 수요 강도가 약화되자 수급 악화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매도에 적극 나서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지난 24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15%포인트 급등한 연 3.83%를 기록했다. 상승폭이 작년 7월23일 이후 가장 컸다. 이 같은 금리 급등은 연방정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계속 늘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입찰 수요 기반이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들어 회사채 발행이 증가함에 따라 국채를 팔고 대신 수익률이 높은 회사채를 매수하려는 투자자가 증가한 점도 국채 수급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10년 만기 스와프 스프레드가 이틀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도 국채 투자의 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마이너스 스와프 스프레드는 우량 은행의 신용리스크 금리가 무위험채인 국채 금리를 밑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욱진/유승호 기자/뉴욕=이익원 특파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