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대체투자 펀드계의 '산파 역할'-이혁진 AV자산운용 사장
국내 최초의 특허 펀드, 국내 최초의 골프장 펀드, 국내 최초의 다이아몬드 펀드, 국내 최초의 엔터테인먼트 펀드….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AV)자산운용 사장(43·사진)이 그동안 운용해 온 펀드에는 대부분 '국내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가 대체투자(AI;주식과 채권이외에 대한 투자) 펀드계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사장에게 붙은 별명은 "펀드계의 이단아'다. 남들이 다루지 않는 자산으로 최초의 펀드를 만들기에 붙여진 것이다. 그는 2009년 12월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에스크베리타스 자산운용을 설립, 대체투자 펀드 운용에 발벗고 나섰다.

"우리나라 주식의 시가총액이 약 1000조원이라면 제가 담당하고 있는 대체투자 분야의 전체 시장 규모는 1000조 달러에 이를 겁니다. 1000조와 1000조달러는 1000배 차이 아닙니까? 훨씬 더 광범위한 펀드 시장이 존재합니다. 이런 대체투자 시장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대체투자 10년전부터 준비했다"

이 사장이 대체투자를 준비한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2000년대 초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활성화되면서 증권사들은 온라인 고객 확보를 위해 수수료 인하 경쟁을 펼쳤습니다. 중개수수료가 더 이상 증권사의 주요 수익기반이 될 수 없단 사실을 인지하면서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체투자가 부각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 사장은 주식과 채권 등 전통 투자자산에서 벗어나 지식재산권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시장을 파고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대체투자 시장이 발전할 것임을 알고 미리 준비해왔단 얘기다.

2004년 간접투자법이 처음 시행되면서 주식이나 채권에만 투자하던 펀드는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에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금, 곡물 등 자원에 투자하는 자원 펀드와 영화, 드라마에 투자하는 엔터테인먼트 펀드도 나올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것.

이 사장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마이애셋 자산운용사에서 부동산 펀드를 중심으로 운용하면서 대체투자에 대한 감(感)을 익혔다. 2005년 6월에는 부동산 펀드를 응용한 엔터테인먼트 펀드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2007년 CJ자산운용(현 하이 자산운용) 특별자산운용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특허 펀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특허 펀드는 잠자는 휴면 특허를 매입, 상업화하면 특허 권리도 찾고 수익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진행했다. 이 역시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물론 최초로 대체투자 펀드를 운용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2007년 처음으로 골프장 펀드 출시를 계획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했다.

"처음 골프장 펀드를 계획하자 부동산 팀장이 이 펀드는 도무지 운용할 자신이 없다고 발을 빼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 대체투자 시장이 발전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 팀을 새로 구성해 골프장 펀드를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회사 대표와 경영지원본부장이 강하게 반대를 했지만 저는 사표까지 제출하며 제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결국 4명을 신규 영입해 충북 중원CC골프장을 인수했고 최초의 골프장 펀드를 설정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해당월 골프장 인수 매입금액의 일정금이 회사에 수익으로 발생했고, 덕분에 CJ자산운용은 창사 이래 최고의 월별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골프장 영업이익률도 73%를 달성해 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 펀드가 사회를 변화시켜야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대체투자 펀드계의 '산파 역할'-이혁진 AV자산운용 사장
이 사장은 펀드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 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은 그가 마이애셋 자산운용 시절 운용했던 '애국 성장형 펀드'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임원 회의에서 큰 반대에 부딪혔지만 저는 펀드 명칭에 '애국'이란 단어를 꼭 넣어야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왜 '애국'이냐 하면 당시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저평가된 상태였고, 투자자들이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우량주를 중심으로 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국부를 증진시키는 길이자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금융 사관학교'를 설립해 우수한 금융인재를 양성하는 '백년대계 펀드'도 계획 중이다. 금융인재를 키우는 일이 곧 국가 선진화에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운용하는 펀드들의 대부분은 사모펀드다. 즉 연기금,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한 공모펀드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안정성을 첫 번째로 추구합니다. 이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시키는 안정화된 구조로 프랜차이즈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펀드를 계획 중입니다."

그는 여자에게 데이트를 청하고, 결혼 자금을 모아서 결혼하고 2세가 탄생하는 과정이 펀드 운용 4단계 과정과 비슷하다며 비유했다. 펀드운용에 있어 4단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1단계 딜 소싱(Deal Sourcing), 즉 어떤 펀드를 운용할 지에 대한 협상 과정을 거쳐 2단계엔 스트럭쳐링(Structuring) 작업을 통해 펀드 구조를 안정화시킨다. 펀드 레이징(Fund-Rasing) 과정에서는 자금을 모으고 마지막 매니지먼트(Management) 단계에서 펀드 운용 관리를 한다는 게 그의 펀드 운용 4단계에 대한 설명이다.

리스크는 각 단계에서 담당자들과 지속적인 피드백 작업을 통해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2단계와 4단계는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달성할 수 있지만, 1단계와 3단계는 평상시에 신뢰기반 네트워크를 구축해놨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상시 절친하게 지내는 성형외과 의사 선배를 통해 미국에서 특허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의 친동생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년간의 공동 작업 끝에 특허 펀드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이죠. 딜을 보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좋은 딜을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평소 기반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 사장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25개 펀드를 운용했지만 단 하나도 원금 손실을 본 적이 없다. 펀드별 연평균 수익률은 7.5%~11.5%를 기록했다. 1~4단계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철저한 피드백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저는 항상 예측 가능한 수익률 구간을 먼저 설정한 뒤 운용합니다. 또 각 단계에서 철저히 리스크를 분석하고 전문가들과의 피드백 과정을 여러 번 거친 후 펀드를 출시해왔습니다. 이 때문인지 아직 그 수익률 구간을 벗어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패가 없다는 표현보다는 양호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는 마지막 단계에만 치중하는 주식형 펀드매니저와는 달리 4단계 모두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종교배가 동종교배보다 우월하다"

이 사장의 사무실 한 쪽 벽면 화이트보드에는 올해 운용 예정인 펀드에 관한 아이디어로 꽉 채워져 있었다. '의료 관광을 위한 기반조성펀드', '산림자원 조성을위한 10년대계펀드', '출산장려펀드'…. 새로 발굴한 투자처도 확실히 생소하다.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금융인이 왜 이런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지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많이 찾아다닙니다. 생물학에서도 이종교배가 동종교배보다 우수한 종자를 만들어냈듯이 펀드 설정에 있어서도 타 분야와의 접목이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는 AV자산운용사의 전문가 구성진도 남다르다. 상임고문직에는 위아브솔루션스 미국 법인 대표인 박충수 변리사와 백석찬 변리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출신의 이진수 변리사가 참여하고 있다. 정근화 변호사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부교수가 이사직을, 삼성전자 법무팀 출신의 서권식 변호사가 감사직을 맡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의학용 로봇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의학용 로봇 산업의 선두 국가가 될 수 있단 생각에 진행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유수의 한 통신사로부터 금융과 통신을 결합시키는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얻는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을 예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접근하느냐 또한 중요합니다. 가령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왜 하필 이 장면을 이 각도로 보여줬을까를 고민해야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용하느냐는 순전히 자기의 몫인 셈이죠."

◆ "대체투자 시장의 미래에셋이 되겠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대체투자 펀드계의 '산파 역할'-이혁진 AV자산운용 사장


세상 모든 것을 투자대상으로 삼는 그가 생각하는 펀드매니저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 사장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는 펀드매니저의 필수 요건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반대에 봉착하면 뚫을 수 있는 에너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펀드를 설정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해온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했다.

펀드매니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의외로 '여백의 미(美)'를 강조했다.

"인재는 만들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사고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신입단계부터 교육시켜서 인재로 키워낼 자신이 있습니다. 또 우수한 펀드매니저에게는 그에 맞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줄 겁니다."

그는 '대체투자 분야의 강자'로서 우뚝 서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우수한 인재들이 좀 더 투입된다면 세계적인 콘텐츠 비즈니스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허 시장도 금융권과의 만남이 필연적입니다. 대체투자 시장이 성장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콘텐츠, 에너지 자원개발 분야, 의료·서비스분야 펀드가 특화돼있는 AV자산운용이 기여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셋이 전통 주식형 펀드의 강자라면, AV자산운용은 대체투자 시장의 미래에셋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금융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있어서 일과 개인적인 삶은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듯 했다. 그의 다음 '최초' 펀드는 또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