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나폴레옹3세의 부인인 위제니 드 몬티조가 영국 윈저의 연회에 엄청난 볼륨감을 자랑하는 후프 스커트를 입고 참석하면서 영국 사교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몇년전 패션모델 출신인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롤라 부르니 여사(?)가 명품 드레스들을 입고 영국을 방문했을 때와 유사한 듯 하다.)이 젊고 야심찬 황후가 순백의 레이스로 뒤덮인 의상을 입고 우아하게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특히 엉덩이 부분이) 풍성한 치마에 주목했고,빅토리아 여왕마저 그녀를 ‘매혹적’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당시 위제니 황후의 후프 스커트는 ‘새장형 크리놀린(여자들이 치마를 불룩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안에 입던 틀)’이라고 불렸고 강철로 만든 최초의 패션품목이었다고 한다.이후 1년도 안돼 서유럽과 미국의 멋쟁이 여성들은 이 패션을 경쟁적으로 따라했다고 하는데.

크리놀린은 허리를 벌처럼 가늘게 보이게 하기위해 엉덩이를 그로테스크하게 부풀리는 보정속옷이었다.위제니 황후 이전에는 고래뼈 등으로 만든 크리놀린을 여러겹 덧대 입는 방식으로 엉덩이의 부피감을 늘렸다.하지만 엉덩이의 볼륨이 느는 대신 무게가 엄청나게 가중되는 부담을 견뎌야 했는데 새장형 크리놀린은 첨단 소재인 금속제 태두리를 사용하면서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이에 따라 이 패션품목이 인기를 끌면서 후프 스커트 때문에 교통이 막히고,치마가 마차 바퀴에 걸리기도 하고,겨울철에는 난로를 지나다 불이 옮겨 붙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다고 한다.또 사실 이런 종류의 불편한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정도여서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유한계급과 노동자계층이 나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크리놀린의 인기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이후 영국에선 “가짜 볼기짝”이라고도 불렸던 커다란 둔부 보조물인 ‘버슬(bustle)’이 유행하면서 크리놀린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한다.크리놀린이 치마 전체를 부풀리면서 엄청난 양의 천을 소모했지만 엉덩이 뒤쪽 부분만 강조하는 허리띠+후방 철사망+리본의 결합물인 버슬은 크리놀린보다 보다 간편하고 실용적으로 엉덩이를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여성들이 엉덩이가 극단적으로 부각된 의상이 인기를 끌었던 원인에 대해선 엉덩이가 여성의 성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때 여성은 남성보다 엉덩이가 튀어나와 있는데 이 성별신호는 원시사회와 고대부터 극단적인 형태로 강조되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에선 선사시대의 각종 비너스상과 모성신상에서부터 엉덩이는 툭 튀어나온 형태로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또 아프리카 호텐토트족 같은 경우처럼 자연적으로 엉덩이 근육이 극적으로 발달한 경우나,빅토리아시대 영국처럼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패드로 엉덩이를 강조하는 것이나 모두 마찬가지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진화 생물학자 데이비드 부스에 따르면 여성의 육체적 단서(특징,표시)는 여성의 생식적 가치(즉 애를 잘 낳는다는 것)를 증명해주는 가장 강력한 가시적 신호였고,엉덩이는 그 대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의 연구결과,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의 체격에는 차이가 있어도 사람들은 일정한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을 좋아하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남자들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은 여자를 가장 매력적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한마디로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인데.이는 남자들이 그린 펜 그림이나 컴퓨터가 만들어낸 사진 이미지에 대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이같은 현상을 데즈먼드 모리스의 표현을 빌려 표현해보면 “고대 이집트의 무용수들은 오늘날 나이트클럽에서도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밀로의 비너스가 살아있다면 그녀의 히프는 94cm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데벤드라 싱은 특히 30여년간 미국내 미인대회 우승자들을 분석해본 결과 우승자들의 허리/엉덩이 비율이 0.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는데,허리/엉덩이 비율이 작은 수치를 보이는 것은 현재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남성들에게 가장 극명하게 전달하는 신호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 공중파 방송 아침프로그램에서 자사 기상캐스터가 ‘엉덩이 패드’를 했다는 식의 허위내용을 방영해 당사자가 크게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제대로 사실확인도 안된 사안을 대대적으로 방영한 것도 문제지만,설혹 기상캐스터가 ‘엉덩이뽕’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과연 실명으로 방송할 수 있는 내용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여하튼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엉덩이에 대한 관심이 수면위로 떠올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그동안 언급되지 않았었지만 21세기 한국사회도 엉덩이에 대한 관심에 있어선 빅토리아 시기 영국사회와 별반 다를바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든다.하긴 오늘도 퇴근길만 되돌아 봐도 지하철 열차내 광고판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엉덩이 패드’광고를 쉽게 접하지 않았는가.

<참고한 책>
테레사 리오단, 아름다움의 발명, 오혜경 옮김, 마고북스 2005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Ⅳ-부르조아의 시대, 이기웅·박종만 옮김, 까치 1994
데이빗 부스, 욕망의 진화, 김용석·민현경 옮김, 백년도서 1995
데즈먼드 모리스, 맨워칭-인간행동을 관찰한다, 과학세대 옮김, 까치 1994
데즈먼드 모리스, 인간의 친밀행동-동물적인,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의 본능에 관한 보고서, 박성규 옮김, 지성사 2003

▶김동욱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