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서울 강남도 진입과 퇴출,번성과 쇠락이 교차하는 생태계다.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새롭고도 다양한 지도를 그려낸다.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은 강남의 대표 주거지역인 △압구정동 △도곡 · 대치 · 삼성동 △방배동의 '생태계'를 통해 거주민들의 성향과 직종 등을 비교해봤다.

◆최고 부촌 압구정동

압구정동 한양아파트(105㎡ · 32평)에 25년째 살고 있는 김모씨(63)는 월평균 600만원의 임대수익으로 생활하는 전형적인 '압구정동 부자'다. 몇 해 전 두 자녀에게 강남의 아파트 한 채씩을 해주고 분가시킨 뒤 50억원대 자산(부동산 포함)을 가지고 있다.

수백억원대 자산가였던 그는 '부모의 유산'과 '절약정신'을 부를 축적한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부모에게 받은 것만 잘 지켜도 부자로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결혼 전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정도로 엘리트였던 김씨(경기여고 졸업)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돈 잘 버는 남편과 결혼했다"며 "하지만 쓸데없는 데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만 썼다"고 강조했다.

전통 부촌인 압구정동은 '여전히' 강남구 최고의 부자동네다. 2009년 강남구청 통계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534만원으로 강남구 평균(480만원)을 훨씬 웃돈다. 특히 월평균 소득 1000만원 이상인 초고소득층의 비중이 5명 중 1명 꼴로 강남구 내에서 가장 높다. 김진기 국민은행 PB팀장은 "국민은행 기준으로 압구정동의 자산 예치금은 도곡 · 대치동의 1.8배에 달한다"며 "부동산을 제외하고 30억~50억원 정도의 현금을 보유한 대표 부자들"이라고 말했다.

유산 상속형인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유난히 높다는 것.이연정 하나은행 PB센터 팀장은 "압구정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8 대 2 수준"이라며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의 100억원 이상 빌딩 자산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25%(25명)가 압구정동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압구정동 부자들은 '매우'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띤다. 현금 자산을 여러 통장에 쪼개 투자하며,자신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은행 PB들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간다. 어려운 시기를 경험한 60~70대가 많다 보니 검소한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신흥 전문직 부촌…도곡 · 대치 · 삼성동

강북의 구의동에서 살다가 1999년 자녀교육 때문에 대치동 선경아파트로 강남에 '진입'한 모대학 교수는 "압구정동엔 전통 부자들이 많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많아서 도곡 · 대치동과는 수준 차이가 나는 것 같다"며 "이들 지역엔 교육을 통해서 성공한 전문직이 많기 때문에 나름대로 동질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첫째 딸(중매결혼)이 졸업한 경기여고 학부모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그는 "주로 대치동 선경,미도,우성 아파트와 삼성동 아이파크,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부모들이 참석한다"며 "아버지의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이라고 소개했다.

전문직 종사가 많은 대치 · 도곡 · 삼성동은 강남의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평균 소득은 480만원으로 강남구 평균과 비슷하지만 전문직 종사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삼성동(27%)의 경우 월평균 527만원으로 압구정동과 별 차이가 없다. 2007년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이들 지역 주민의 4명 중 1명(약 25%)이 전문직이다. 이는 강남구 전체(20%)와 압구정동(22.4%)의 전문직 종사자 비율을 웃도는 수치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자녀 교육열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3개월간 강남 주요 9개동 거주자의 비씨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대치 · 도곡동의 학원비 사용액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신용카드 이용 상위 10개 업종 가운데 학원비가 차지하는 순위는 대치동이 6위,도곡동이 9위를 기록,순위권에도 들지 못한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였다. 2007년 강남구청 통계에서도 고액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곳은 단연 대치동이었다. 전체 주민의 11%가 월평균 200만원 이상을 사교육비로 쏟아부었고 32%가 월평균 100만~200만원을 썼다. 반면 전통적인 부자들이 많은 압구정동은 전체 주민의 4%만이 200만원 이상을 월평균 사교육비로 지출했다.

◆과거 명성 잃어가는 방배동

600억원대 부동산 자산가인 유종우씨(62)는 "더 이상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방배동은 은퇴한 노인들이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방배동 아파트(12세대)에는 대부분 70~80대 노인이 살고 있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단 한명도 없고 은퇴한 재단 이사장,중소기업 사장 등 자영업 종사자가 주를 이룬다.

방배동은 서래마을 등 고급 빌라촌이 밀집한 전통 부촌이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평이 많다. 송재원 신한은행 방배 PB센터 팀장은 "다른 강남 지역 집값은 10년 전 대비 크게 상승했지만 방배동은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배동은 강남의 주요 부촌 중에서 3.3㎡당 매매가격이 2293만원으로 가장 낮다. 2003년까지만 해도 압구정동(2069만원) 반포동(1956만원) 대치동(2292만원) 등 다른 부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6년 동안 두 배가 채 오르지 않을 정도로 상승률이 낮았다.

이 때문에 방배동이 은퇴 노인들의 '강남 실버타운'으로 변모해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임민영 한국투자증권 PB센터 팀장은 "방배동 거리는 개를 끌고 산책하는 노인들이 중심인 '늙은 동네'가 됐다"며 "다음 세대로 부가 이전될 때는 부촌의 자리를 넘겨주게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고연령층이 많은 만큼 투자성향도 압구정,도곡 · 대치동과 비교해 가장 보수적인 편이다. 이제현 하나은행 방배 골드클럽 센터장은 "예금 이외에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 투자 비중이 매우 낮다"며 "부동산 투자에도 관심없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성선화/강경민/최만수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