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네스카페' 앞.사진 작가 조진환 씨(31)는 "운치있는 카페들이 많아서 옷 사진이 훨씬 예쁘게 나온다"며 여성모델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렀다. 인터넷 의류쇼핑몰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그는 몇년 전부터 평일마다 이 거리에서 촬영을 한다. 반면 10여년전 한국 최고의 상권으로 불렸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유동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며 예전같은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

강남이라고 다 같은 강남이 아니다. 2~3년만 해외를 다녀와도 '노는 물'이 달라져있다. 2008년말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반포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도 강남의 스카라라인을 큰 반경으로 바꿔놓았다. 김종학 반포1동 동장은 "입주 전까지는 이 동네가 공사장 같았지만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가로수길 자체가 명품"

최근 3년전부터 강남의 새로운 안테나 숍으로 급부상한 신사동 가로수길은 특유의 운치와 문화를 상업적으로 잘 결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여대생 이수영 씨(23)는 가끔 '커피빈' 앞 테라스에서 햇볕을 쬐며 한가로운 오후를 만끽한다고 한다. 인근의 디자인소품매장 '북바인더스디자인'에 들러 학용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노트는 가장 저렴한 품목을 기준으로 한권에 4만원,연필 한자루는 5000원이다.

가로수길의 성공 비결은 뭘까. 상권 전문가들은 현대고등학교 맞은편에서 도산대로까지 700m를 직선으로 잇는 지리적 특성에 주목한다. 서울시 강남소상공인지원센터의 김민홍 상담사는 "직선라인은 상권이 형성되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며 "서울에서 이 정도로 쭉 뻗은 길은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가로수길 상점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집적효과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이곳 상인들은 20년 전부터 '문화거리'를 겨냥해 남달리 공들여온 성과라고 말한다. 건물주들은 1990년대 명동에서 강남으로 이탈한 패션숍들을 적극 유치했고,골방이 딸린 옛날식 점포 구조는 과감하게 폐기했다. 로데오거리 건물주들이 비싼 월세만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문표 동방컨설팅 대표는 "사실 이곳은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문화,트렌드가 아니면 외부 유동인구를 끌어들일 특별한 테마를 찾기 어려운 곳"이라며 "어느날 우연히 갑자기 뜬 상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유동인구가 급증하면서 유명 브랜드와 중저가 매장도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13㎡(4평)짜리 수제악세사리점 '파머'를 창업한 성혜수 씨는 "명동을 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고객들의 높은 소비성향을 감안해 가로수길에 점포를 냈다"고 말했다.

◆변화를 거부한 상권의 퇴락…로데오 거리

가로수길이 '뜨는 해'라면 로데오거리는 '지는 별'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씨(50 · 여)는 이제 더 이상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지않는다. 가게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별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가게가 지난해 초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해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숨을 쉬었다.

로데오 거리 상인들은 전성기였던 IMF 직전과 비교하면 유동인구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중심부에 위치한 B의류매장의 경우 2000년대 중반 하루 200~300만원이었던 매출이 올 들어서는 100만원 아래에서 맴돈다. 이면도로 점포들은 사정은 더 좋지않다. 중저가 여성의류를 파는 C매장 대표는 "한 달에 며칠씩 공치는 날도 나온다"며 "최근 중국 · 일본인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매출에 큰 도움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로데오 퇴락의 주된 원인은 유동인구가 인근 상권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시네시티 극장과 도산공원 인근이 활성화되면서 20~30대 고객층이 옮겨갔다는 것.로데오거리가 변화의 노력 없이 압구정동의 후광에 안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발길은 가로수길과 청담동 등의 신흥 상권으로 급격하게 옮겨갔다. 서정헌 넥스트창업연구소장은 "기존 로데오상권중 미용은 청담,패션은 학동사거리 등으로 분산됐다"고 분석했다. 이범수 연세부동산컨설팅 CEO는 "지금 로데오길에 나와있는 상품들은 강남외의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포 스카이라인의 변모

서울 강북에서 반포대교를 타고 강남으로 넘어가다보면 거대한 '아파트 숲'을 만나게 된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외관 만큼이나 세련된 조경과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서초구 반포주공 2 · 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 단지다. 총 5109세대로 2008년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이 두 단지는 최근 강남권의 신흥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강남의 젊은 부유층을 끌어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다. 반포자이에 사는 허남지 양(16)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선 PC방 밖에 갈 데가 없었는데 피트니스센터,목욕탕 등 어디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의 입주자 분석결과에 따르면 전입 세대의 20%가 강남 · 송파구에서 유입됐다. 이중 60여명은 강남구 타워팰리스에서 이사왔다. 연령대별로 보면 청소년인 10대가 40%(6081명),20~30대(5560명)가 36%에 달한다. 50~60대가 대다수인 압구정동과는 완전 딴판이다. 이진섭 만복래 공인중개 대표는 "인근에 법조단지·성모병원 등이 있다보니 젊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들이 많다"며 "여의도도 가까워 젊은 금융인들이 살기도 괜찮다"고 말했다. 목동하이페리온에서 이사 온 여건호씨(치과의사·33세)는 "서울의 중심이라 교통이 편하고 자이센터 등 커뮤니티 시설이 잘돼있어 좋다"고 말했다.

성선화/남윤선/이유정/최만수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