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의 '백호(白虎) 해'인 2010년 설날을 맞는 서울대공원 식구들에게는 특별한 소망이 하나 있다. 국내 유일의 시베리아 흰호랑이인 '백운이'를 시집보내는 것이다. 백운이는 올해 열 살.사람으로 치면 38~40세쯤 되지만 사람들로부터 누리는 인기는 중년을 앞두고도 전성기의 빛을 잃지 않는 '골드 미스'나 다름없다.

하지만 백운이가 우리에서 홀로 나이 먹어가는 게 사육사들은 못내 안쓰럽다. 그래서 '백운이 시집보내기'에 나섰다. 백운이 시집보내기는 2007년에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수컷 호랑이 '청이'와 합사(合舍)했으나 백운이가 청이를 두 번이나 물었다. "청이의 나이가 어려 여자 다루는 법을 모르다보니 백운이가 '남자'로 보지 않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고 사육사들은 설명한다.

올해 백운이의 결혼을 위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있는 수컷 호랑이는 '대환이'.대환이는 올해 네 살로 사람으로 치면 스물대여섯 살.요즘 대세인 '연상 · 연하 커플'인 셈이다. 2007년 '백운이 시집보내기'를 시도했을 때 호랑이 등 맹수 사육을 맡았다가 지금은 곰 사육에 도전하고 있는 추윤정 사육사(28)를 만났다.

추 사육사는 "백운이의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은 생애를 외롭지 않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몸무게가 300㎏에 육박하는 곰과 호랑이를 '아이'라고 부르는 그의 말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새해에는 백운이가 꼭 시집가기를 사육사들과 함께 기원해보면 어떨까.

▼백운이의 합사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서로의 체취와 모습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해요. 무작정 한 우리에 넣을 경우 서로 싸워서 한쪽이 죽는 경우도 생깁니다. 맹수는 잠깐만 맞붙어도 서로 깊은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죠.그런 위험을 줄이고 서로 친숙해질 수 있도록 우리 중간에 철망을 설치해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을 기회를 줍니다. "

▼'대환이'와는 전망이 어떻습니까.

"경과가 좋다고 들었어요. 잘 하면 이달 말쯤 한 우리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호랑이 커플이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백호는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일반 호랑이와 다른가요.

"백호라서 그렇다기보다는 같은 종이라도 개체에 따라 성격은 달라요.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고 점잖은 아이도 있죠.백호는 좀 천진한 편입니다. 다른 호랑이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다보니 사람을 보면 좋아하고 좀 더 친근하게 대하는 편이죠.이름을 부르면 바닥을 구르면서 애정을 표시하기도 해요. "

▼어떤 계기로 동물원 사육사가 됐나요?


"중학교 때 강아지를 키웠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강아지가 아프거나 어머니한테 혼나면 내 마음도 따라 아팠어요. 애완용 동물을 통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죠.동물을 돌보는 일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 맹인견 훈련원에서 일하다 동물원까지 오게 됐어요. 2007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2년 정도 맹수사에서 호랑이와 퓨마 등을 돌보다 지난해부터 곰사에 있습니다. "

▼특별히 맹수나 곰을 좋아합니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배치됐지만 좋아요. 강아지도 소형견보다는 좀 큰 녀석을 좋아했거든요. 평소에는 무심한 듯이 지내다가도 한 번씩 마음을 열어줄 때 참 기분이 좋습니다.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 맹수들은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어느 정도 정이 들면 먼저 알아보고 우리 바깥쪽까지 나와서 '가르릉' 소리를 내거든요. '튕기는 맛'이 있다고 할까요. "

▼백호 외에도 특별히 짝을 지어주려는 커플이 있나요.

"레서판다인 '앵두'와 '상큼이'가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국내에 두 마리밖에 없는 아주 귀한 동물이라 새끼가 나오기를 동물원 식구들이 모두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예민한 동물이라 번식이 쉽지 않아요. 발정이 쉽게 되도록 영양 관리를 충실히 하고,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도 우리 안에 마련해뒀어요. 이 녀석들이 아이를 갖는 게 저의 올해 최대 목표예요. "

▼덩치가 큰 동물이라 위험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 철망이나 철제 문을 사이에 두고 관리하므로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안을 청소하고 관리할 때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옆의 작은 방으로 맹수를 옮겨놓고 청소를 하는데 작은 방과 우리 사이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사고가 나거든요. 지난해 일본에서도 번식을 위해 다른 동물원에서 빌려온 호랑이가 닫히지 않은 문으로 튀어나와 사육사를 죽게 한 적이 있었죠.맹수사에서 덜 닫힌 문을 발로 차서 완전히 닫으려다 호랑이 발톱에 장화가 찢어진 일도 있어요. 맹수라도 사람과 교감이 있어서 사육사를 공격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닫힌 문 사이로 움직이는 발만 보다보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

▼동물을 관리하면서 어떤 부분에 특별히 신경씁니까.

"'동물 행동 풍부화'라고 해서 동물원에서 생활하더라도 야생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본능에 맞도록 먹이 주는 방법을 바꾸거나 놀이터를 만들어 줘 야생의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는 거죠.예를 들면 원래 나무에서 많이 생활하는 반달가슴곰을 위해서는 주위에 말라 죽은 나무를 심어 놀 수 있도록 합니다. 먹이도 바닥에 떨어뜨려 주는 게 아니라 나무 위에 올려놓습니다. 야생에서 직접 채집하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죠.이렇게 나무 타는 능력을 기른 반달곰이 어느 날 벽 위로 올라가려 해 관람객들이 깜짝 놀랐던 적도 있어요. 사막 출신의 미어캣을 위해서는 우리 안에 모래를 두텁게 깔아주고,후각이 발달한 재규어나 표범에게는 향수를 뿌린 나무토막을 던져주기도 해요. "

▼야성을 보존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본성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동물에게 편안하기 때문이죠.관람객들도 야생의 모습에 더 가까운 동물을 볼 수 있고요. 서울대공원에서는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하고 있어서 이런 업무가 특히 중요합니다. "

▼반달가슴곰 방생 과정이 궁금합니다.


"갓 태어난 반달가슴곰을 특별 관리해 어미 젖을 떼기 무섭게 지리산으로 돌려보냅니다. 작년에는 1월에 태어난 새끼곰을 7월에 지리산으로 보냈죠.이 과정에서 사육사들은 가급적 서로 정이 들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해요. 어미곰과 새끼곰을 격리된 방에 넣고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는 거죠.사람과 친숙해지면 자연상태로 돌아가서도 사람을 피하기보다는 가까이 하려 할 수 있거든요. 배가 고프면 제 힘으로 먹이를 구하기보다 민가로 내려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죠."

▼사육사의 일과는 어떻습니까.


"아침 8시에 출근하면 먼저 동물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간밤에 안 좋은 일은 없었는지,몸은 괜찮은지 육안으로 확인하고 '잘 잤느냐'며 말을 걸죠.그리고 우리 안을 청소해요. 우리마다 30분 정도 걸리는데 배설물 등을 치우며 동물의 건강 상태도 대략 확인해야 합니다. 청소에만 두 시간 이상이 걸리니까 오전이 거의 다 지나가죠.오후에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관람객들에게 동물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동물 행동 풍부화' 등의 활동도 이 과정에서 이뤄져요. 주말 관람객이 많다보니 이때 일하고 다른 요일에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사육사로서 포부가 있다면요.


"어떤 동물이든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문제가 있을 때 '그건 추 사육사한테 물어봐'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지금도 즐기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