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불안했다. 누가 이기고 질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건데 너무 만만하게 여기지 싶었다. 경기에 앞서 상대팀 전력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나 그러니 어떻게 대비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은 없이 그저 32년 무패만 강조하면서 공한증(恐韓症) 운운하는 게 영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일 일본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과의 경기는 실로 보기 민망했다. 0 대 3으로 완패한 것도 어이 없었지만 전후반 90분에 추가 3분까지 계속 헛발질만 해대는 모습은 과연 우리 축구가 발전하고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중국팀의 활약은 놀라웠다. 13억 인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체격은 유럽선수를 능가할 정도고 조직력과 개인기도 뛰어났다. 경기 내내 짧고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력 수비를 통해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한편 빠른 역습으로 공격 찬스를 살려냈다.

반면 우리팀의 움직임은 둔탁하기 그지 없었다. 밀집 수비에 막혀 돌파력을 잃고 우왕좌왕한 데다 패스는 부정확하고 슛은 허공을 향했다. 골 결정력 부족에 투지와 집중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판국에 감독이 나서서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경기력 점검을 위해 곽태휘,이근호 등 동계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들을 기용한 게 화를 불렀다거나 주심과 제1부심 모두 홍콩 출신이어서 불리했다는 등의 변명을 하는 건 듣기 딱하다.

오래 앞서 달린 자의 자만과 방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도요타 사태가 입증하고도 남거니와 여전히 갈길이 먼 한국 축구팀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공한증 타령이나 한 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통계란 과거다. 확률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추정을 가능하게 할 순 있지만 미래의 결과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무패 전적이 오래 됐다면 그만큼 더 긴장하고 단단히 대비했어야 마땅하다. 한번도 이겨보지 못해본 자의 절치부심이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남아공 월드컵까진 4개월 이상 남았고 따라서 이번 패배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말 없이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긴 뒤 10분 동안은 매우 기뻤지만 금세 앞으로 기대에 부응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부담스러워졌다"는 가오홍보 중국팀 감독의 말은 어떻게 해야 승자가 되는 건지 알려준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