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향후 집값 동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셋값이 큰 폭으로 오르자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는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올릴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나 과거의 '전셋값 상승→집값 상승' 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셋값 상승폭이 컸던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잠실동의 A공인중개사는 "최근 전셋값이 5000만원 이상 뛰면서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고객들의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집값과 전셋값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최근 나타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세난이 이어지면 과거처럼 전셋값이 언제든 집값 불안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집주인의 요구대로 전세가격을 맞춰주지 못한 세입자가 '집 크기'를 줄이는 대신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인근 지역으로 '하향 매수'에 나설 경우 집값을 끌어올릴 우려가 높다. 강남권 전세 수요가 송파,강동 등지의 집값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 사전청약이 끝나는 4월 이후에는 전세 수요로 눌러앉아 있던 대기 매수세들이 기존 주택 매수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전세금이 계속 오르면 이른바 '전세 저항'이 생겨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갈아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재건축이나 새 아파트보다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반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움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광석 스피트뱅크 실장은 "전셋값이 집값의 40~45% 정도 되면 전세 수요가 매매로 돌아설 수 있다"며 "이 경우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급매물이나,아직 최고가를 뚫지 못한 단지를 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옛날 공식'일 뿐 더 이상 들어맞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로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래미안 181㎡형의 경우 지난 18일 전세가격이 한 달 전에 비해 2000만원 오른 6억5000만원이지만,매매가격은 오히려 한 달 전보다 1000만원 떨어진 18억1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DTI 규제 강화로 세입자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길이 사실상 '원천봉쇄'됐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정부 통계상 작년 12월 말 현재 서울 강남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하 전세가율)'은 38.4%다. 강남의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전세(3억8400만원) 살고 있다면 6억1600만원이 있어야 내집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강남은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금고 등 제2금융권까지 DTI가 적용돼 금융권에서 담보대출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다 여전히 경기 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덜컥 집값의 50~60%를 대출받아 집을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때문에 전세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봄 이사철 집값을 밀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대표는 "강북 소형이 아닌 강남 20~30평형대의 경우 DTI 규제와 보금자리 대기 수요 등으로 전세가격 강세 현상이 집값을 밀어올리기에는 힘에 부칠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도 "담보대출 규제 때문에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전셋값 강세만으로는 집값 상승을 예상하기 힘들다"며 "위례신도나 2차보금자리 지구 등 유망 매물이 있어 더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도 많다"고 말했다. 김규정 부동산114 부장은 "원론적으로는 전셋값이 오르면 집값도 오르지만,최근 흐름을 보면 집주인이 전셋값 상승을 믿고 매매 호가를 올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