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제안한 것은 대우건설 매각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0월 중순 무렵이었다.

당시 민유성 산은 행장은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차원에서라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말문을 꺼냈지만 금호는 외면했다. 금호 고위 관계자는 "자진 워크아웃 신청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금호는 대우건설 매각 상황이 기대이상이라며 성공적인 매각으로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 6월 대우건설을 넘기라는 산은의 제안을 거부한 금호로서는 퇴로가 없는 상태였다.

산은의 분위기는 11월18일 대우건설 인수제안서 접수 결과를 지켜본 뒤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산은 관계자는 "한마디로 잿빛"이라며 "인수자 측의 자본조달 구조에 문제가 있어 플랜B(대안)로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5일 뒤인 23일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 공동주간사 업무에서 빠지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산은은 내부적으로 "더 이상 금호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금호 태스크포스가 꾸려지고 재무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함께 워크아웃을 통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이 실패할 것으로 보고 한 달간의 작업 끝에 지난 18일 금호 주요 계열사에 대한 2조3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과 대우건설을 주당 1만8000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플랜B'를 만들어 정부에 보고했다. 청와대도 "금호 문제는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한다"는 원칙을 정하면서 산은의 계획을 승인했고,산은은 금호에 이를 전달했다.

금호는 그러나 "그룹 와해로 이어지는 경영권 포기는 있을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오히려 21일 자베즈파트너스를 단독 협상자로 지정하고 이달 말까지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매각 절차를 끌고 가겠다며 산은에 동의를 요청했다.

산은은 금호의 요구를 '벼랑 끝 전술'이라고 보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대우건설을 주당 2만원에 매각하더라도 풋백옵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만큼 채권단이 내민 마지막 카드를 받으라고 설득했다.

양측은 21일부터 사흘간 자정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워크아웃이냐,매각 강행이냐를 놓고 합의를 보지 못했다. 산은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저녁 "더 이상의 협상은 없으며 30일이 데드라인"이라고 최후통첩했다.

금호는 28일까지 마지막 '구명활동'을 벌였으나 산은은 정부안에서 후퇴는 있을 수 없다며 워크아웃 이외 다른 대안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때 대우건설을 포스코 등 다른 기업으로 넘기는 방안이 막판까지 논의됐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금호는 29일 저녁 금호산업과 타이어를 출자전환하는 데 동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만큼은 유지하겠다며 끝까지 버텼고,이날 밤 결론을 내지 못했다. 30일 오전에 재개된 협상에서 금호석유화학은 채권단 자율협약이라는 형태로 접점을 찾았다.

채권단이 자금을 회수하지 않고,출자전환을 하지 않는 대신 자구 노력을 통해 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이다. 금호 측은 20일 워크아웃 신청 직후 "결국 산은이 원하는 '그림'대로 된 것 아니냐"며 허탈해 했고,산은은 "금호에 훨씬 많은 수습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놓쳐버렸다"며 아쉬워 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워크아웃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에 대해 채권금융기관들이 모든 채권 행사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회사를 공동관리하면서 출자전환,채무탕감 등의 방식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금융권에 대한 총채무가 500억원 이상인 기업이 대상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아시아나 여신을 보유한 금융회사에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을 통보하게 된다. 이후 채권금융회사들은 기업 실사를 거쳐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워크아웃 계획을 수립,확정한다. 워크아웃 계획은 채권단의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워크아웃이 끝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3~5년이 걸린다.

자율협약
주로 금융권 여신이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구조조정할 때 쓰는 방식이다. 기업 규모로만 따지면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나의 경우 항공기 리스 등 해외 차입이 많아 워크아웃이 결정되면 해외 채권자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간주해 채무 상환을 한꺼번에 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을 반영해 자율협약으로 결정했다.

자율협약은 법적 구속력 없이 채권단과 기업 간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보다 강제성이 떨어지고 이해관계 조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채권단과 기업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폭이 크고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해당 기업은 채무상환 유예 등의 혜택을 보지만 자산 매각 등 철저한 자구 노력을 통해 자체적인 경영 정상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 채무동결 효과

은행 등 금융권이 갖고 있는 채권만 동결된다. 협력업체들은 물품대금 등을 청구할 수 있다. 물품대금 지급이 중단될 경우 거래 관계가 끊어지면서 기업을 회생시키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에 들어가더라도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대금은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기한이익 상실(event of default)의 사유가 발생했을 때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매입약정을 맺었다면 만기 전이라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