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10일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기준금리(정책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제 관심의 초점은 내년 언제부터 금리인상이 시작될 것이냐에 맞춰지고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과 민간연구소 전문가들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이르면 내년 2~3월께엔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불안요인'과 '낙관적 측면'을 동시에 거론하면서도 '낙관적 측면'에 훨씬 더 무게감을 뒀다. 이 총재가 꼽은 불안요인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실 가능성 △미국과 유럽 은행들의 활발하지 않은 대출 △동유럽 등 채무가 많은 국가에서의 채무조정 요청 가능성 등이다.

그는 하지만 이런 요인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든 만큼 내년엔 올해보다 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에선 내년 경기가 "상당히 괜찮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경기도 마찬가지로 "밝다"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다. 우선 내년 수출 환경도 괜찮고,정부의 재정지출이 줄고 있는 4분기 들어서도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으며,물가도 내년 2.5~3%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11일 발표하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대해서 4%대 중후반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내년 경기가 좋아지는 데 비해 연 2.0%의 기준금리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내년 5% 성장이 확실해진다면 엄청나게 낮은 연 2%의 기준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 수준에 대한 판단도 '실적'으로 보지 않고 '전망'으로 보겠다고 밝혀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성장 등 경제상황 점검주기에 대해서도 이제까지는 3분기 4분기 등 분기를 제시해 왔으나 앞으로는 매달 하겠다고 바꿨다.

이 총재는 정부에서 걱정하고 있는 고용에 대해서도 "고용부진은 경기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있는데 통화정책에선 구조적 요인까지 감안하긴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특히 "우리는 출구에서 떨어져 있는 만큼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려면 문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정책금리 인상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우증권은 한은이 내년 2월과 3월에 0.25%포인트씩 1분기 중 0.5%포인트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계인 바클레이즈캐피털은 한은이 내년 2월께 0.25%포인트 올리고 3분기 중 추가로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민간연구소들은 좀 더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투자와 민간 소비가 자생력을 갖춘 2분기 이후 상황을 보고 인상시기를 저울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관건은 부동산인데 돌발변수가 없다면 내년 상반기 말부터 인상을 검토하는 게 좋다"고 제시했다.

한편 채권시장 참가자들 중 일부는 이 총재가 지난 9월부터 발언의 수위가 오락가락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9월엔 금리인상,10월과 11월엔 상당 기간 동결,이번엔 다시 인상을 시사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도 금리가 동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엔 전날 대비 보합 수준이었지만 이 총재 발언이 전해지면서 급등세로 돌아서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0.09%포인트나 뛰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