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5주년…음반과 자서전, 뮤지컬 기획
이승철 "가수는 판검사보다 경쟁률 세다"
최근 동부 이촌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이승철(43)은 휴대전화 속 딸 원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벌써 소녀 티가 난다"고 눈을 떼지 못했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조두순 사건'을 대하는 심정이 남다르겠다고 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짓 아닌가. 한 아이의 인생을 짓밟았으니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이 되고서 그는 음반과 공연 활동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10집 후속곡 '사랑 참 어렵다'로 활동 중인 그는 24일 진주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전국을 돌며 하반기 공연 일정도 빼곡히 잡아뒀다.

이달부터 11월까지 여수, 충주, 원주, 울산, 창원에서 '뮤토피아(Mutopia) 시즌 2' 공연을 펼치며 12월부터는 새 공연 타이틀인 '로맨티카(Romantica)'로 인천, 부산, 대전, 서울 무대에 오른다.

--중소도시 공연까지 매진시키며 전국투어를 하는 가수는 국내에서 몇 안 된다. 연중 수십 차례 공연을 해도 무대는 매번 새로운가.

▲'오늘은 노래가 잘되네, 안되네', 지금도 그런 걸 느낀다.

잘 되면 어린애처럼 신나서 노래하고 안되면 긴장해서 식은땀을 흘리고 내려온다.

지금도 순간적으로 노래 가사가 생각 안 나 더듬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24년간 올라도 무대는 늘 재미있다.

--10집의 성적은 어떻게 평가하나.

▲음악과 대한 욕심과 욕구도 끝이 없다.

타이틀곡 '손톱이 빠져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별세와 함께 다시 큰 사랑을 받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이길 수 없었다.

내 노래에 내가 발목 잡힌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와 비슷한 '사랑 참 어렵다'를 후속곡으로 내놓은 것은 잘한 전략이다.

--내년 25주년을 맞는데 계획은.

▲기념 음반과 공연, 자서전, 창작뮤지컬, 영화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 작업을 시작한 자서전에는 부활 시절부터 지금껏 살아온 에피소드가 담긴다.

내 노래로만 채워지는 뮤지컬 기획도 시작했는데, 나는 디렉팅과 배우 선정에만 관여하고 시나리오 등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다.

또 내 노래가 담기는 한국판 '원스(Once)' 같은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다.

--25년이라는 시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부활 시절은 방위로 군 생활을 할 때였다.

이때 이태원에 방을 얻어놓고 부활 멤버들과 살 때였는데 군인이었기에 몰래 가발을 쓰고 공연했다.

당시 합숙 시절이 음악을 가장 열심히 했을 때인 것 같다.

또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 있을 때 매니저가 면회를 와 결별 통보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3집부터는 직접 제작했다.

운전하는 동생 데리고 방송사에 들어가 LP판을 손수 돌린 것도 기억난다.

--만 19세에 데뷔했으니, 요즘 어린 가수들을 보면 남다른 생각이 들지않나.

▲그들도 지금은 재미있고 신날 것이다.

스타가 되는 과정이니 꿈의 무대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가수가 되는 건 쉽다.

오래 유지하고 활동하는 게 어렵다.

가수는 노래로 말해야 하니, 생명력은 히트곡이다.
이승철 "가수는 판검사보다 경쟁률 세다"
--최근 음악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도전자들에게 꽤 호된 질책을 하더라.

▲가수 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내 심사 점수에서도 나타났지만 우승한 서인국은 사실 아쉬운 실력이다.

서인국이 휘성, 김태우, 박효신 같은 가수들과 음악 프로그램에 나란히 서는 것은 솔직히 상상이 안된다.

하지만 서인국이 매번 탈락 1순위였음에도 우승한 것은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나는 연습생들에게도 실력도 좋지만, 운명이 너를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운명적으로 '딴따라'를 하도록 타고난 사람이기에 죽을 때까지 음악만 할 수 있다.

가수는 실력보다 신이 내려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 국민적으로 합의가 되면 스타가 된다.

이 계급장은 본인이 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음악계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낮지 않나.

▲학력 위주의 사회여서 선입견이 있다.

클래식 예술인은 보통 대학 교육까지 받은 이들이기에 순수예술은 고품격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대중음악은 딴따라로 여긴다.

가수가 아무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슈퍼스타 K'에서 우승한 서인국은 72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판검사가 되는 사법고시보다 경쟁률이 세다.

--양현석, 박진영 등 1990년대 활동한 후배들이 제작자로 성공한 모습을 볼 때 2세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자신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앞으로도 나는 후배 양성은 안 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리타이어'다.

은퇴의 의미가 아니라 쉬는 것이다.

공연 횟수를 줄인다거나, 내가 할 일의 수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내가 공연 횟수를 줄이길 바란다.

--아내와 결혼 전 한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나.

▲가정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려 한다.

딸들의 생일을 챙기고, 학부모로 학교에도 간다.

--미혼남녀에게 결혼 예찬을 펼친다면.

▲결혼하고 보니 그전에는 애였더라. 철이 없었다.

총각 때와 비교해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어 양적, 질적으로 삶의 반경이 풍족해졌다.

--부모님께는 효자였나.

▲내가 무슨 효도를 했겠나.

이제는 어머니와 통화하기가 무섭다.

여든살이 다 되신 어머니의 숨찬 목소리가 듣기 안타깝다.

결혼 전에는 함께 살았지만, 결혼 후 자주 못 뵙는 게 아쉽다.

아내가 원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께 들른다.

손녀 재롱을 보셔야 엔도르핀이 도신다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