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이나 기다렸어요. 빨리 좀 들어갑시다. " "죄송합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지난 17일 오전 9시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앞 주차장에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은 대한항공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개최한 '하늘사랑 특별바자회'가 열린 날.바자회에 입장하기 위해 늘어선 줄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승무원들이 내놓은 물건 중 좋은 게 많다'는 입소문을 타고 서울 강서구뿐만 아니라 일산 분당 지역 주민들까지 한꺼번에 몰린 탓이다. 100여명의 대한항공 자원봉사자들은 몰려드는 손님으로 인해 하루 종일 진땀을 뺐다. 그렇지만 사회와 함께한다는 보람 때문에 그들의 얼굴에선 진땀보다 더 진한 뿌듯함이 배어 나왔다.


◆지역주민들의 폭발적 참여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한 줄은 길었다. 30~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입장한 사람들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쓸 만한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어서였다. 7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5000원에,50만원짜리 유명 브랜드 의류를 3000원에 샀으니 그럴만도 했다. 몇 번 쓰거나,포장도 뜯지 않은 좋은 물건이 많아 웬만한 물품은 오전에 동이 났다. 예상외로 지역 주민들이 몰리자 대한항공은 장바구니용 봉투를 한 사람당 한 개로 제한하기도 했다. 먼저 바자회장에 도착한 사람이 물건을 싹쓸이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날 하루 바자회장을 찾은 사람은 3000여명.시민들의 호응은 그만큼 뜨거웠다. 인천에서 온 서경아씨(40)는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저렴한 물건을 한가득 살 수 있어 좋았다"며 옷과 화장품으로 가득찬 봉투를 보여줬다. 이어 "이런 기회를 더 자주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일산에서 왔다는 김정주씨(41)는 "대기업에서 이런 행사를 마련해준 덕분에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좋다"며 "물건을 판매한 돈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다는 말을 듣고 뿌듯한 마음까지 얻을 수 있어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여승무원 봉사 동아리인 '고니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윤희 선임사무장은 "수익금을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는 행사 취지가 전해지면서 바자회를 찾은 사람이 더 늘어난 것 같다"며 "물품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이런 행사를 더 자주 갖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임직원 모두가 2만여점 물품 기증

지역민들의 호응만 뜨거웠던 게 아니다. 대한항공 임직원의 참여 열기도 폭발적이었다. 대한항공은 2006년부터 승무원 봉사 동아리인 '고니회'와 '승우회'(남승무원) 주최로 바자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창사 40주년을 맞아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지난달 초부터 한 달간 물품 기증 운동을 벌인 결과 모인 물건은 2만여점.예년의 배를 넘었다. 해외 현지 토산품부터 명품 의류,신발,가방,화장품,향수 등 품목도 다양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부터 앞장섰다. 조 회장은 직접 골프 클럽,고급 액자,여행용 가방,그림 등 100여점의 물품을 내놨다. 객실 승무원 4800여명 중 3500여명이 1만1000여점의 물품을 기증했다. 승무원 한 사람당 3개 정도의 물품을 내놓은 셈이다. 일반 직원들도 9000여점의 물품을 기꺼이 가져왔다. 회사 전체 임직원이 참여한 대규모 바자회다웠다.

조 회장은 이날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전시된 물건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는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직접 보러 나왔다"며 "사회공헌 활동도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연계한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에 전달

하늘사랑 바자회의 특징은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번 바자회를 통해 거둔 수익금도 전액 서울 강서구청과 강서교육청 등 지역 내 주요 기관에 기탁할 예정이다. 기관에 보낸 바자회 수익금은 다시 지역 내 소년소녀 가장,양로원,고아원 등에 전달된다. 대한항공은 이미 4년째 강서구 지역 결식 청소년 및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해 왔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태원 대한항공 사회봉사단장(상무)은 "바자회로 1억원 정도의 수익금을 모았다"며 "팔리지 않고 남은 물품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서 자원봉사를 맡은 김중현 대한항공 노사협력팀 대리는 "바자회 행사가 지역사회와 대한항공을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역주민과 회사 모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 승무원 줄리아씨는 "러시아에선 기업들이 단순히 물품을 모아 전달만 하는데,이 같은 행사를 통해 수익금을 거둬 다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항공의 하늘사랑 바자회는 기업과 이웃을 끈끈하게 연결하는,하늘만큼이나 넓은 따뜻함을 가진 사회공헌 활동이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