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페루 정부가 기획재정부에 이메일 한통을 보내왔다. 경제개발과 수출진흥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충근 재정부 개발협력과장은 "페루 정부의 고위 관료가 한국을 방문해 도움을 공식 요청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으며 지원대상 국가로 선정이 되면 현지를 방문해 수요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보름 전에는 남미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정부에서 비슷한 요청서가 왔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나와 남아공이 산업발전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을 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한 달 전에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산업혁신전략을 수립하는 데 한국인 정책자문관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파견에 드는 비용은 물론 자신들이 내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는 개도국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벌써 15개국에서 전수해 달라는 정책과제만도 79건에 달한다. 지역도 아시아뿐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경제한류가 전 지구촌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경제한류에 본격 나선 것은 2004년부터다. 단기간에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배경과 외환위기 극복 경험을 전수해 달라는 개도국의 요청이 늘어나자 재정부 주축으로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을 시작했다. 경제한류의 핵심인 KSP 사업은 경제발전 정책 수립에서부터 산업육성 전략,농업진흥정책,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나라마다 벌이는 사업도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쿠웨이트는 한국의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그대로 따라했다. 쿠웨이트가 향후 중동의 금융 및 무역의 허브로 크기 위해선 교육,인력개발,민영화,민자제도 등에 관한 5개년 개발계획이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 자문단의 컨설팅을 현지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쿠웨이트 기획개발최고위원회는 한국 자문단의 도움으로 '쿠웨이트 5개년 개발 계획' 초안을 작성,내각과 국왕에 제출했으며 의회가 심의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는 중소기업육성정책을 배워 현지에 맞게 적용키로 했다. 한국 자문단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10년 로드맵을 짜줬고 현재 로드맵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 중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우리나라 도움으로 WTO 가입 절차를 진행 중이다. WTO 가입 경험을 살려 가입에 필요한 협상기술부터 농업,관세,시장개방 등 제반의 이슈들에 포괄적 자문을 수행해준 덕분이다.

알제리는 소비자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 자문을 한국에서 받은 결과 한국식 신용카드 사업을 도입키로 했고,모잠비크는 농지이용 효율화 방안과 농수로 현대화 사업 등을 한국에서 배워 현지에 적용할 계획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한류 사업이 인근 국가로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한국거래소(KRX)의 베트남 거래소 설립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성공 사례를 본받아 아예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기구 설립을 통째로 한국에 의뢰했고 라오스와 몽골도 거래소 설립을 요청했다. 이들 3개 국가는 거래소 개설을 도와주는 대가로 KRX에 거래소 지분을 주기로 합의했다. 말레이시아 거래소는 영국과 인도 등 세계 굴지의 회사를 제쳐두고 KRX에 증권시장 채권매매 시스템 개발을 부탁했고 태국도 증권거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주문해왔다.

2004년에 시작한 경제한류 사업은 올해까지 6년간 20여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프로젝트 숫자만도 모두 162개에 달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기존의 '전문분야별 정책자문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정책자문을 실시하는 '포괄 컨설팅 방식'을 병행키로 했다. 필요할 경우 정책자문관을 파견해 상주시키는 방안도 적극 고려 중이다.

주형환 재정부 대외경제국장은 "KSP가 대부분 정책컨설팅인 만큼 지원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 국가당 많아야 3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그로 인해 파급되는 부수 효과로 따지면 아마도 수조원의 가치는 족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도국에 대한 경제발전 지원은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 향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우리 기업들의 현지 진출의 탄탄한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 관계자는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한국형 원조모델 정립이 목표"라며 "한국과 함께 하는 경제발전이 단순히 컨설팅 개념이 아닌 한국의 경제 성장 노하우를 공유하고 그들과 상생관계를 유지시켜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