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와 인도가 구분되고 가로수가 생긴 다음 공원이 늘어난다. 도시는 이렇게 진화한다. 집도 그렇다. 아파트는 더하다. 1958년 서울 종암동에 첫선을 보인 이래 아파트는 변신을 거듭했다. 62년 마포아파트엔 수세식 변기,68년 남산 힐탑아파트엔 중앙난방이 도입됐다.

70년 여의도 시범아파트엔 주차장과 공원,유치원이 갖춰졌고,75년엔 건설사 이름을 딴 아파트가 등장했다. 86년 아시아선수촌과 88년 올림픽선수촌엔 필로티를 활용한 1층 정원이 나왔다. 오랫동안 크게 다르지 않던 아파트 디자인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건 98년부터.

분양가는 자율화됐으나 외환위기로 미분양 사태가 잇따르자 여기저기서 차별화된 설계를 내놓기 시작했다. 수납공간을 늘리고,조리와 식탁을 겸할 수 있는 아일랜드식 보조주방을 곁들이고,현관과 주방 뒷베란다를 잇고,거실과 주방 사이에 개폐 가능한 자바라식 문을 설치했다.

99년 이른바 브랜드 시대가 열리면서 아파트는 또다시 탈바꿈했다. 학군과 교통 이상으로 브랜드가 중시되면서 주차장을 지하로 내려보내고 지상은 공원처럼 꾸미는 게 일반화됐고 단지 안에 운동시설과 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하는 등 공동주택의 장점을 최대화하기에 이르렀다.

불황은 혁신을 낳는 법.근래엔 더욱 독창적인 디자인이 쏟아진다. 상 · 중 · 저층부 디자인을 달리해 중층 일부는 두 세대 거주가 가능한 복층형으로 꾸미거나,같은 가구에서도 거실과 식당 천장을 높이는 등 구조적인 것부터 한국식 욕조,현관 벤치 등 인테리어까지 아이디어가 빛난다.

국토해양부가 아파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채광과 통풍을 위해 거실과 침실의 창 하나는 반드시 외부와 접하도록 하고,옹벽이 5m를 넘으면 별도의 조경이나 문양마감 등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국내의 아파트 거주 비율(43.89%)이 단독주택(42.94%)을 넘어선 상태고 보면 가이드라인 설정은 늦은 건지도 모른다.

집은 모델하우스와 달리 전시용이 아니다. 아름다운 외관 이상으로 쾌적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근사한 대문,멋진 조경,고급스런 주방과 욕실,최첨단 홈네트워크도 좋지만 자꾸 줄어드는 작은 방의 크기와 붙박이장(여닫이)의 형태,좁은 현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층간 소음을 없애줘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