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와 기도.."민주화.민족화해 큰 발자취"

이명박(MB) 대통령이 11일 오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예정에 없이 찾았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직후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호전됐다는 보고를 듣고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보는 게 도리가 아니겠느냐"며 갑작스럽게 방문을 결정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방문에 앞서 참모들에게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민족 화해에 큰 발자취를 남긴 나라의 지도자"라면서 "그런 점에서 문병하고 쾌유를 비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이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40분께. 비가 오는 가운데 보라색 넥타이에 짙은 정장차림을 하고 병원 현관에 도착한 이 대통령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박창일 연세의료원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곧바로 VIP 대기실이 있는 병원 20층으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손을 잡으며 "힘드시죠"라고 위로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 차남 홍업씨를 비롯해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했으며,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격려했다.

자리에 앉은 이 대통령은 "저는 기도부터 먼저 하겠습니다"라며 두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으며,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자리를 함께한 청와대 및 김 전 대통령측 인사들도 일제히 약 1분간 기도 시간을 가졌다.

기도를 마친 이 대통령은 "기도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 여사도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또 이 대통령은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고 재차 당부했으며, 박창일 원장이 "매번 고비고비마다 (김 전 대통령이) 잘 이겨내시고 있다"고 전하자 "본인이 워낙 집념이 강하시니까.

."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뒤에서, 안 보이는 곳에서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빌며) 기도하고 있다"면서 과거 서울시장 재임시절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돼서 국무회의에 처음 갔더니 김 전 대통령이 소개를 어찌나 잘해 주시는지 그래서 기억을 한다"면서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청계천(복원사업)을 정말 하느냐'고 해서 내가 `된다'면서 `꼭 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후에 한번 찾아 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차를 타고 (청계천을) 다 둘러보셨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박지원 의원이 "의료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김 전 대통령이 워낙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잘 털고 일어나실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충분히 일어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며 공감을 표시한 뒤 "국가원로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여사는 "이 대통령이 방문해 주시고 기도를 해 주셔서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으며, 이 대통령은 "여사님도 몸 관리를 잘하시고 좀 쉬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옆을 계속 지키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다행히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서 어제오늘 (병세가) 좋아지셨다"고 설명한 뒤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오전, 오후 한번씩 연락을 하고 있다"면서 "오늘이 (입원) 30일째인데 이 대통령이 오셨으니 (김 전 대통령이) 힘을 내실 것"이라고 말했다.

약 15분간 환담한 이 대통령은 자리를 뜨면서 "(김 전 대통령이) 깨어나시면 (왔었다고) 전해달라. 깨어나시면 다시한번 오겠다"고 인사했으며, 이 여사는 "김윤옥 여사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당초 지난 주말 병문안을 검토했으나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칫 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미뤘다"면서 "오늘 방문에서도 김 전 대통령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병원 방문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인종 경호처장,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이 수행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