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내한 팝스타 '대변인'

팝송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내한하는 팝스타들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시통역사 태인영(35)씨.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그동안 정말 많은 팝스타들을 만났어요.

몇 명을 만났냐고요? 5년 전까진 328명을 만났는데 그 이후론 세지 못하고 있어요.

인원수를 센다는 게 의미가 없더라고요"

최근 내한한 영국의 록 밴드 플라시보의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해외 스타들의 통역을 맡게 된 건 매우 우연이었다고 전했다.

어릴 때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6년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유년 시절의 친구를 찾으려고 대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KBS '지구촌 영상 음악'에서 주최한 팝송 콘테스트에 참가하게 됐다.

영국인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유창한 영어와 노래 실력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The Greatest Love Of All)을 불러 최우수상을 거머쥔 그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광한씨의 제안으로 통역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일이 벌써 16년째.
"처음으로 통역했던 팝스타가 아마 뉴에이지 음악을 하는 야니 아니면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였던 것 같아요.

오래 돼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호호. 아, 친구요? 방송 덕분에 찾았어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을 멋지게 부를 정도로 태인영은 팝송과 음악을 좋아한다.

이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뒤 음반회사 EMI에서 근무했고 이후 마이클 잭슨과 잉베이 맘스틴 등의 내한공연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전신인 트라이포드 록 페스티벌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 등 팝계의 대스타들을 만나기 전에는 설레기도 해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옆에서 '입'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색소폰 연주자인 데이브 코즈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단체 이메일로 연하장을 보내는 정도지만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팝스타는 없어요.

다들 바쁘실텐데요 뭘… 호호"
그는 자신의 통역한 팝스타들과의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싶어 5년 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제가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난 사람 수를 세지 않게 된 5년 전부턴 팝스타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려요.

제가 잘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없어요.

누구와 함께 추억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는 통역을 하기 일주일 전부터 자신이 담당하게 될 팝스타의 음악을 계속 듣는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 스타의 노래 한 두 곡은 외울 수 있을 정도는 돼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잖아요.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전달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말하는 뉘앙스와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이 때문에 그는 동시통역사보다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라고 불리기를 원한다고. 단순한 통역보다는 소통을 돕는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명함에도 '커뮤니케이터 태인영'이라고 적혀 있다.

통역사 외에도 아리랑TV와 EBS, CBS 등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국제 행사에서 MC를 맡고 있는 팔방미인 태인영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통역사 혹은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면 물론 어학에도 재능이 있어야 하죠. 그러나 중요한 건 영어를 즐기라는 거죠. 영어는 기술이 아니잖아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활 속에서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팝송을 흥얼거리면서 가사를 외우는 식으로요.

어떻게 보면 쉬운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