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가 또 연기됐다. 전남 고흥 우주센터 발사장 근처에서 휴가를 즐기며 발사광경을 지켜보려고 계획을 잡았던 국민들의 실망과 원망의 소리가 귓전에 요란하게 들리는 듯하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계속되는 발사연기 소식에 실망스런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발사연기가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결정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발사연기로 실망이 크겠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국민적인 자존심이 상처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로호는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발사체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우리나라는 고체추진제를 사용하는 로켓을 개발하면서 기본적인 로켓기술을 습득했고 그 후에 우주발사체로 적합한 액체 로켓의 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액체 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에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바탕으로 진행했다. 잘 알려진 대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해 외국의 기술협력 파트너를 찾았을 때 러시아를 제외한 어떤 나라도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은 한 나라의 국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민감한 국가기술이므로 다른 나라에 기술이전을 하지 않는 게 국제적인 관행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우주발사체 개발의 기술 협력 파트너로 응해준 것은 발사체를 개발하려는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발사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우선 각 부분품을 설계,제작할 수 있는 요소기술이며 둘째는 발사체 전체를 신뢰성있는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종합기술이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진행된 나로호 개발은 요소기술뿐 아니라 체계종합기술을 습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비록 1단 엔진을 러시아가 제작해 우리에게 인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체계종합기술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요소기술을 바탕으로 신뢰성 높은 발사체로 만드는 체계종합기술은 개발에 참여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확보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한 체계종합기술의 확보는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을 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발사 연기보다는 오히려 일방적이며 무성의하게 보이는 러시아의 태도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술협력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나로호 발사 이후에는 2018년까지 한국형 발사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계획이 마련돼 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15년여 동안 우리의 우주개발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저궤도 실용위성을 성공적으로 개발했고 내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을 개발해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 이번 나로호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독자적인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 가능하게 돼 명실상부한 우주강국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주를 향한 여정에서 험난하고 어려운 부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 계속되는 발사 연기에 대해 실망하기보다 앞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우주개발에 대한 더 큰 미래를 생각하며 성공적인 나로호의 발사를 차분하게 기원해본다.


이창진 <건국대 교수·항공우주공학/한국연구재단 우주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