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4일 방북으로 남북관계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는 등 남북관계도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기대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여기자들이 석방되고,북 · 미 당국간에 대화 국면이 전개된다면 꽉 막힌 남북관계에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도 이제 남한이 북 · 미 간 대화를 견제하는 세력이 되는 것은 피하려 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최소한 북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남북 간 경색국면이 조기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첫 시험대는 북한이 4개월 이상 억류 중인 '유모씨 석방문제'와 '연안호 선원 송환 여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하고 북측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북한이 북 · 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 추진하기보다는 당분간 북 · 미관계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단 '통미봉남'(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과 대립하는 양상) 기조를 유지한다면 유씨의 석방과 연안호 선원의 송환은 더 늦어질 수 있다. 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유씨 문제의 진전 없이 미 여기자 문제만 해결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곤혹스러운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적절한 경로로 북측에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거론된다.

이와 관련,정부 관계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두 여기자가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미 여기자는 법적 문제가 있음에도 풀어주는데 유씨를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며 '상호주의 원칙'에 방점을 찍어온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요한 변수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8 · 15 경축사를 통해 과감한 대북 구상을 천명하고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느냐,6자회담틀 유지를 고리로 북 · 미 대화의 향배를 좀더 지켜볼지를 놓고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북 · 미 관계의 변화에 대비해 새로운 남북관계 제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동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이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관한 질문에 "그 문제에 관련해선 특별히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으며 현 시점에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 것이 정부가 보인 공식 반응의 전부다. 북 · 미간 만남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는 데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는 향후 북 · 미간 대화가 미국 여기자 문제를 넘어서 정치 · 군사 현안에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북 · 미관계에 전환점이 마련될 가능성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