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민족분쟁이 또다시 폭발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지난 6일 발생한 유혈시위로 15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에선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 주정부 청사가 사제 수류탄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 위구르의 독립추구 세력은 중화기를 갖고 있으며 심지어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소문도 돈다.

작년 말 신장 음식점에서 만난 한 위구르인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는 발전하지만 위구르인은 거의 혜택을 못 받아요. 위구르족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차별 대우를 받고 있죠." 그는 경제가 발전한다고 말들 하지만 주요 기업과 관리는 모조리 한족이고,위구르인은 소외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그 분노가 무장 분리독립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국토의 6분의 1이나 되는 넓은 땅에 터전을 두고 있는 위구르인은 유목민이다. 한족과는 완전히 다른 중앙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종족을 상징하는 단어가 '단합'을 뜻하는 위구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떠돌이 생활의 고단함을 숙명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1758년 청나라의 속국이 됐다.

하지만 유목민 특유의 자유로움은 국가라는 일방적 체제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그들의 방식대로 살고 행복을 추구했을 것이며 이를 위해 서로 간의 단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듯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유목생활은 더 이상 어려워졌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변화를 요구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부대개발이라는 중국 정부의 대 프로젝트는 외견상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에겐 소외감만 키우는 프로젝트였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위구르에서 일어난 상황을 신속하게 전하고 있다. 국영TV와 신화통신 등을 통한 것이긴 하지만 외국 기자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던 예전과는 다르다. 자신감의 발로인지 모르겠지만 한번쯤 뒤돌아봤으면 하는 게 있다. 왜 200년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위구르인이 아직도 중국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중국의 위구르는 계속 시한폭탄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