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를 개발해 내는 한국인의 능력은 놀랍다. 제조방식이 다양한 것은 물론 마실 때 나름대로 '의미'까지 부여한다. 종류는 웬만큼 알려진 것만 해도 수소폭탄주 중성자탄주 드라큘라주 회오리주 무지개주 골프주 등 수십 가지에 달한다. 그 기발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태권도주 비아그라주 타이태닉주 충성주 파도타기주 등은 국립국어원 신어(新語) 자료집에도 올라있다. '2009학년도 서울대 새터(오리엔테이션) 자료'에 에메랄드주(소주와 맥주 이온음료를 같은 비율로 섞은 술) 고진감래주(맥주잔 속에 이온음료와 소주잔을 한 개씩 넣어 만드는 술) 등 4종류의 제조법이 소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만큼 폭탄주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다.

폭탄주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20세기 초 미국 부두노동자들이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를 만들어 마신 게 시초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러시아 벌목공들이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와 맥주를 혼합해 먹은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폭탄주를 마시는 목적은 비슷하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취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주로 '동시에 망가지는 것'을 즐긴다.

이런 '폭탄주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순한 폭탄주'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막소사주(酒)'다. 막걸리와 소주,사이다를 6 대 1 대 3 의 비율로 넣고 잘 저어서 만든다. 특히 주량이 적은 남성이나 여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술을 컵의 3분의1씩만 따르는 '미폭(미니 폭탄주)'과 양주에 물만 타서 마시는 '물폭(물폭탄주)'도 유행이란다. 소주의 알코올 함량이 점차 낮아지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아무리 순해졌다 해도 폭탄주는 술에 약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일부 주한 외교관은 폭탄주가 무서워 저녁 회식을 기피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좌중이 주시하는 가운데 주량에 관계없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마셔야 하는 획일주의가 일종의 '폭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마시다 보니 우리나라의 '음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연 20조990억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연세대 보건대학원)도 있다. 전투하듯 술을 마시는 것은 사회,가정,건강 등 어떤 면에서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