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이기고 나니 음악적 깊이 더해져"
1987년 성악가로서 기량이 최고였던 41세의 호세 카레라스는 오페라 '라보엠'의 주역을 맡아 한창 연습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병명은 백혈병."처음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100만분의 1의 가능성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죠.그래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놓지 않았어요. 음악이 병을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됐죠."

8일부터 내한 공연을 갖는 테너 호세 카레라스(63)는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병이 있었다는 건) 이제 옛날 이야기일 뿐이죠.지금은 건강 상태가 좋고,나이가 들면서 곡이 깊이있게 전달돼죠"라며 이같이 말했다.

스페인 출신의 호세 카레라스는 1971년 '베르디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성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등을 누비며 정상급 테너로 활동하던 도중 1987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선고를 받았다. 그는 골수이식 수술 등 힘든 치료 과정을 견뎌내고 1990년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3테너' 콘서트에서 전 세계 팬들에게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1988년 스페인 미국 스위스 독일 등에 지사를 두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 국제백혈병 재단'을 설립해 거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백혈병 퇴치에 음악만큼이나 열정을 쏟고 있다.

"아플 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빚을 갚고 싶어요. 최근 백혈병 완치율이 30년 전에 비해 높아졌죠,백혈병 치료에 재단이 힘을 보태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요. 현재 어린이 백혈병 환자의 70~75%가 병을 이겨내고 어른의 50% 정도도 병을 극복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죠.백혈병을 인류가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

그는 '세계 3대 테너'로 함께 꼽혔던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냈다.

"그들은 제 음악 여정을 풍성하게 해준 친구들이에요. 도밍고는 얼마 전 런던에서 만나는 등 자주 연락하고 지내죠.파바로티가 타계했을 때는 세기의 테너를 잃어 더욱 슬펐어요.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가 그립죠."

1979년부터 10여차례 내한공연을 가졌던 카레라스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호응도가 높은 한국은 항상 공연하고 싶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한국에서만 공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한국 관객의 뜨거운 반응은 항상 인상적이에요. 전반적인 클래식 수준도 높죠.예전에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갔었는데 70%가 한국에서 온 성악가들이었어요. "

그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8일 경희대,10일 영남대,12일 고양아람누리 등 세 차례 무대에 선다. 스페인식 오페레타인 사르수엘라 '파랄의 여인' 중 '행복했던 시간이여','아비 카스텔레'의 '멀리 있는 나의 조국' 등 국내에서 거의 공연하지 않은 스페인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한국 가곡 '목련화' '신아리랑' 등도 부를 예정이다. 2004년 체코에서 카레라스와 듀오 콘서트를 가졌던 소프라노 박인혜가 특별 출연해 카레라스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7일에는 서울 경희의료원을 방문해 백혈병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자신의 투병생활 등을 주제로 특강할 예정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